30대 여성 홀로 집 짓기의 소회
어느 날 아침이었다. 둥그스름한 천창을 통해 집 전체에 푸르스름한 아침 햇살이 스미고 있었다. 이 정도 웅장함이라면 장조의 우아한 클래식이 흘러나와야 어울릴 텐데, 귓가엔 GOD의 <길>이 흐르고 있고 기분은 마이너스를 향하고 있었다. 대출 실행 후 첫 상환금이 그제 출금됐기 때문이다.
나는 대출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대출이라곤 오래전 퇴사할 때 만든 이천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이 전부. 할부도 마찬가지다. 일시불이 원칙인 인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제 내가 대한민국 가계부채의 한 축이 되었다는 점에 자존심인지 뭔지가 상해서, 어느 한 구석에서 하수구 냄새 같은 게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꼭 집을 지었어야 했니?’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하며, 이렇게나 많은 은행 빚을 지면서 말이다.
집 짓는 일이 힘드냐는 물음을 많이 받았고, 나는 여과 없이 사실을 말해왔다. 숨길 것도 없었고 좋은 일보단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너와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누구나 힘든 일’이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지출될 것이고, 일은 계획대로 안 될 것이며, 맘에 들지 않은 사람과도 일을 해야 하고,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많을 것이다.
해가 바뀌었지만 나도 여전히 분노 악령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낭비한 비용, 괘씸한 태도들, 듣지 않아도 될 말들, 아직도 듣지 못한 사과들. 시간의 경과와 망각만이 내 좁은 속을 들끓게 하는 그 검은 악령을 쫓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집을 지으며 힘든 것은 다양한데 그중에서 가장 힘든 것은 ‘말들’이다. 노파심과 걱정과 격려의 말들. 이렇게 했어야지, 저렇게 했어야지, 그 돈을 왜 네가 냈어, 왜 그걸 네가 했어, 내가 말했잖아, 같은. 그 말들의 의도와 다르게 지옥탕에 빠진 건축주에게 그런 염려의 말은 ‘바보 멍청이가 된 느낌’을 줄 때가 많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안 그래도 버둥대며 힘든데, 다들 내가 바보 같은 피해자가 되었다고 말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그러나 그 말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문맥’이다. 이럴 때 꺼내기 적당한 노랫말로 장기하의 <그건 니 생각이고> 만한 게 또 없다.
네가 이 집 지어봤냐? 아니잖아.
네가 이 집 살아봤냐? 아니잖아.
네가 이 동네 살아봤냐? 아니잖아.
네가 이 사람들이랑 일해봤냐? 아니잖아.
땅이라는 문맥, 동네라는 문맥, 그간 오간 대화의 문맥, 그리고 관계라는 문맥. 그 치밀한 문맥을 타인들은 모른다. 이 집 짓기의 경력직은 오로지 나뿐. 우리는 일을 하면서 원칙을 자주 이야기하지만, 집 짓기에서는 원칙보단 상황과 문맥이 우선이었다.
들리는 말들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어느 순간부터는 ‘나니까’라는 자기애에 빠져 살았다. 나니까 이 정도로 한다, 나니까 이걸 견딘다, 나니까 이런 일을 벌였다, 나니까 남친도 남편 없이도 혼자 이만큼 한다,라고.
넘치는 체력, 배려받을 수 있는 나이, 덜 차별받는 성별은 내게 없지만, 대신 참지 않는 성격, 불만은 말하고야 마는 좁은 속,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맷집이 내겐 있다. 그런 자뻑에 취하지 않았으면 도무지 견뎌낼 수 없던 시간이었다. 지옥을 헤엄치고 있는 내게 자뻑은 유일한 보상이었다. 장도연 님이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외친다는 주문, 그것은 탁월한 효과가 있다.
“나 빼고 다 잡곡밥이다.”
땅이 녹기 시작했다. 미완의 부분들을 작업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정비하고 있다. 뒤늦게 담장이 세워지며 개들을 마당에 풀어놓기가 한결 마음 편해졌다. 주차장 바닥을 타설하며 곧 차도 담장 안에 세울 수 있으니 프라이버시를 강화할 수 있겠다. (시골에선 밖에 차가 있고 없고로 사람이 집에 있고 없고를 판단하는데 그게 너무 싫었다.) 갈수록 물이 시원찮게 내려가서 손님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절수형 변기도 하이탱크로 하나씩 교체 중이다. 계속 신경 쓰이더니, 지난주 집들이 손님인 지연 & 상희 언니의 외투도 하얗게 만든 벽면 분진은 발수 코팅이 미흡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다시 발수 작업을 하기로 했다. 앞으로 당분간은 또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불편하고 불만스러웠던 집의 여러 부분이 정상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일처리도 이제야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자연히 그리 된 것은 아니다. 그 뒤에는 바이아키텍처 김괄 실장님의 갈아넣기와 중재가 숨어 있다. 그를 보며 ‘태도’의 중요성에 대해 반추한다. 나의 일은 어땠는지, 일 속에서 나의 태도는 어떠했는지, 좋은 태도는 고래를 어느 정도까지 춤추게 할 수 있는지. 그의 책임감 있는 태도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잔재하는 검은 악령들을 하얗게 중화시키는 유일한 촉매가 되어 주고 있다.
다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 꼭 집을 지었어야 했나? 집을 마련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지어질 팔자였다.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하더라도, 이렇게나 많은 은행 빚을 지더라도. 3년 전으로 돌아가도 나는 땅을 알아본다고 설레서 시동을 걸었을 테고, 창호 사건이 터졌던 작년 여름으로 돌아가도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뒤로 물러설 길이 없었기 때문이 반이고, 어떻게든 끝을 보겠다는 마음이 반이었다.
집을 짓고 나서 처음으로 포근한 계절을 맞이하며 얼었던 마음이 녹기도 한다. 이 집이 정말 내 집 같이 편하다. 그 어떤 기깔나는 공간과 맞바꾸자 해도 바꿀 의향은 없다. 이곳은 내게 가장 좋은 땅, 내게 가장 좋은 집이다. 이제 우리 개들에게도 최애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하나씩 가꿔나갈 셈이다.
그러니까, 여건이 되고 지을 고민을 하신다면 이 좋은 날씨를 빌어 당장 임장을 떠나시길 바란다. 하나는 약속할 수 있다. 언제나 오늘 짓는 게 제일 저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