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김미리, 자기만의 방, 2022
차로 두 시간 넘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올림픽 대교가 보인다. 나에게는 올림픽 대교가 서울에 다 왔다는 신호다.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들곤 했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얼른 내 방 내 침대로 돌아가 편히 눕고 싶은 마음. 시골집에서 주말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가 편히 눕고 싶은 마음. 시골집에서 주말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내 마음도 비슷하다. 주말 시골살이의 끝이 아쉽기도 하지만, 서울의 야경이 반갑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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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 두 갈래 수도꼭지를 사다가 부동전에 연결했다. 이제 연결된 긴 호스를 빼지 않고도 따로 물을 쓸 수 있다. 정말 신세계다!
수풀집에 살기 전, 서울 집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나는 여지없이 바로 전문가의 손을 빌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골에서는 누군가의 손을 재빨리 빌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서툴고 느리지만 나의 손으로 하나둘씩 해나가고 있다. 망하더라도 일단 시도는 해본다. 자연스럽게 나의 필요를 세심하게 살피고 작은 불편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기억하게 된다. (중략)
수도꼭지를 바꿔 끼우는 일은 전문가의 손을 빌리는 게 더 빠로고 정확할 테고, 어쩌면 수풀집을 돌보는 사소한 기술은 앞으로 내 인생에 큰 쓸모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의 필요를 내가 살핀다는 것, 그 필요를 느리지만 나 스스로 충족시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여전히 내 인생에 쓸모가 있지 않을까.
p.144
도피든 무엇이든 나는 주말마다 시골집에 갔다. 그리고 주말만큼은 마감 시간과 할 일 목록이 없는 시간을 누렸다. 주말마다 의무적으로 잡던 약속이나 모임도 과감히 패스했다. 그저 방전 상태인 나를 충전하려고 애썼다. (중략)
내가 주말마다 텃밭에서 돌보는 것은 제철 채소만이 아니다. 땅에 뿌리내린 작물들처럼 일상 속에 단단히 서 있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 나는 여전히 세상 속 '쪼렙'이라 수시로 배터리 잔량이 낮아지지만, 괜찮다. 나에게는 매주 돌아오는 주말과 도망가지 않을 텃밭이 있다.
p.48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작년 5월, 시골에 자리 잡은 지 딱 1년이 되던 달. 나는 새로운 분야, 새로운 회사로 첫 출근을 했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아마 시골집을 고쳐 살지 않았다면 내지 못했을 마음이다.
p.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