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착한 사람이 된다
분명 어젯밤 춥지 않게 잘 잔 것 같은데, 아침에 느닷없이 콧물을 훌쩍거리거나 얕은 기침이라도 하면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철렁한다. 창문을 열고 자야 할지, 두꺼운 이불을 꺼내야 할지,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지, 난방을 켜야 하는지, 엄마들이 가장 날을 세우고 아이들을 살피는 환절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맘때면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지 싶어 여름 옷을 모아 박스에 넣었다가 옷장에 넣었다가 갈팡질팡이다. 긴 팔을 입혔다가 땀 흘리는 아이를 보고 아직은 아닌가 봐, 내일은 반팔 입혀야겠다. 예측불가 날씨를 맞춰보려고 애쓴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춥다고 낮에 놀 때는 덥다고 다시 밤에는 춥다고 이불을 거실로 끌고 와 덮었다가 내동댕이 치길 반복하고. 덩달아 바빠진 나는 밖에서 얇은 바람막이 점퍼를 들고 쫓아다니며 입혔다 벗겼다 가방에 넣었다 정신이 없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아침, 하나가 팔이 없는 얇은 원피스를 입겠단다. 한창 실랑이를 하다 끝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원하는 대로 입혀 보냈다. 유치원까지 잠깐이니 괜찮겠지 싶기도 했고 아침부터 울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카디건을 들고나가 가는 길에 다시 설득해 보는 두 번째 방법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파트 공동 현관을 나가자 마다 선득한 바람이 불었다.
"추우면 입자. 바람이 씽씽 불어. 에취! 에취!"
몸을 오들오들 떠는 흉내를 내며 카디건을 입히려 해 봤지만 곧 죽어도 싫단다. 자기는 전혀 춥지 않다고.
그날 키즈노트에 유치원에서 바깥 놀이한 사진이 올라왔다. 하필이면 오늘 운동장에 나가 놀았구나. 같은 반 아이들은 오늘 날씨에 걸맞은 옷차림이었다. 벌써 도톰한 긴팔 옷을 입은 아이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혼자 한 여름 옷을 입고 있었던 하나.
이미 지나간 일인 걸 알면서도 사진 속에 내 아이에게 억지로라도 카디건을 입혀주는 상상을 했다.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는 하나에게 다가가 '거봐, 엄마가 춥다고 했잖아. 이거 입고 놀자.' 애타는 표정의 내가 사진 속 하나 옆을 쫓아다닌다. 일하다가도 다시 키즈노트 앱을 켜고 사진 속에 훤히 드러낸 아이의 팔을 자꾸 들여다본다. 그런다고 하나가 따뜻해지는 것도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하원하고 나오는 하나의 마스크가 바뀌어 있다. 콧물이 나서 새 마스크로 바꿔 썼단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 말 내가 정말 싫어하는 말인데. 그럴 줄 알았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했어야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인데. 그런데도 '아이고, 내 이럴 줄 알았지.' 머릿속에서 같은 말만 반복된다.
가져온 재킷을 입히고 얼른 집에 가자고 서둘렀다. 지저분해진 코를 닦아준 다음 이마가 뜨거운지 만져 보고, 오늘은 따뜻하게 입고 자야 한다고 약속을 받아냈다. 만약 오늘 밤부터 열이 오르거나 감기라도 걸려 한 일주일 고생한다면 나는 아마 두고두고 오늘 아침을 떠올리며 후회할 것이다. '그때 옷을 따뜻하게 입혔어야 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아이가 아프면 지나온 모든 순간이 후회로 가득하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우선 이틀 정도 지켜보다 병원에 간다. 증상이 약할 때는 계속 두고 보기도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기침은 곧 의심증상이라 학교든 유치원이든 보내려면 느긋하게 지켜볼 수 없게 되었다. 감기가 쉬이 물러나지 않을 것 같으면 병원에 가서 숨소리는 괜찮은지, 귀에 염증은 없는지 확인한다. 약을 처방받을 때는 항생제가 들어있는지도 확인한다. 항생제가 들어있는 경우 증상이 사라지더라도 완벽하게 나을 때까지 다 먹이는 게 좋기 때문이다. 해열제가 가루약에 포함되어 있는지 따로 주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약을 먹여도 열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 다른 성분의 해열제를 교차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처방받은 해열제가 어떤 계열인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열이 심한 경우 혹시 모르니 해열 패치도 사다 놓는다. 그러면 일단 준비 끝.
보통 38.5도 정도가 되면 해열제를 먹인다. 해열제를 먹여도 떨어지지 않거나 열이 39도 이상일 때는 해열제 복용과 동시에 따끈한 물을 담아와서 손수건을 적셔서 아이의 피부를 닦아준다. 열이 심할 때는 새벽에 두세 번 정도 물찜질을 해준다. 아이는 귀찮고 싫을 텐데도 축 쳐져서 잘 깨지 않는다.
아이 열이 내린 후에도 온도에 맞게 이불을 덮였다 벗겼다 상태를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잔다. 그렇게 보초를 며칠 서다가 한 아이가 나을 때쯤, 다른 아이에게 감기가 옮겨가면 이번에는 또 그 아이의 열보초를 연속해서 서고,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을 때쯤 몸살에 걸리는 것으로 보통 감기 돌림노래가 끝난다.
하지만 오래 약을 먹었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일 때가 있는데 그때부터는 비상 체계다. 아이가 눈이 충혈되도록 심하게 기침을 하는데 밤새 멈추지 않거나, 고열이 떨어지지 않아 자다 말고 헛소리를 하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체력과 상관없이 정신이 재무장된다. 그때부터 내 안위는 안중에도 없게 되고 지상 최대의 과제로 오로지 아이가 건강해지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
감기가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면 가느다란 손등에 바늘을 꽂은 채로 누워있는 아이를 토닥이며 '하느님 부처임 제발 낫게 해 주세요. 제가 앞으로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 기도한다. 건강하던 예전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제가 진짜 기부도 더 하고, 끔찍하게 싫은 그 사람도 용서할게요. 더 양보하고 배려하고, 앞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할 테니 제발 아이만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초를 켜고 무릎을 꿇지는 않지만 더 자주 속으로 빈다. 아이의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아이 등을 쓸어내리고 가습기를 조절할 때마다 기도다.
하나가 크게 다친 일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징검다리에서 점프를 하다가 얼굴부터 떨어져서 앞니를 다친 것. 다른 한 번은 킥보드로 내리막길을 내달리다가 하수구 철망에 바퀴가 걸려 눈 근처가 찢어진 것. 모두 내가 바로 옆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징검다리에서 뛸 때는 내가 바로 옆에서 손으로 막아주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찰나에 잡지 못했고, 킥보드를 탔을 때는 열심히 뒤따라가며 천천히!라고 소리 질렀지만 사고는 일어나고야 말았다.
점프를 할 때는 주머니를 손에 넣으면 안 된다고, 킥보드 바퀴는 하수구 철망에 걸리면 위험하다고 더 확실히 깨닫게 해줬어야 하는데. 내가 한 말이 너무 가벼워 지나가는 말처럼 들렸을까. 더 자주 단호하게 얘기했어야 하나. 아직도 하나가 엉엉 울며 피범벅이 된 그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를 때면 온몸이 저릿하다.
다친 앞니는 신경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치료를 받을 때 어머니는 도움이 안 되니 나가 있어야 한다는 설명을 듣는데 살면서 내 자신이 이렇게까지 싫었던 적이 없었다. 이 멍청한 엄마가 바로 옆에서 뭘 한 거야. 내 새끼가 얼마나 고생할까. 얼마나 아플까. 왜 나는 내가 잡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애초에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어야 했는데 왜 멈추게 하지 않았을까. 한심한 엄마 같으니라고.
킥보드를 타다 넘어져서 눈 바로 위가 찢어져 병원에 누워있을 때도 아이가 아닌 내가 끔찍하게 싫었다. 제발 바로 5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렸으면.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달려서 막아설 수 있었다면. 더 크게 소리쳐서 멈추게 했더라면. 평생 흉터가 남으면 어쩌나. 시력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어째야 하나.
아이가 아프면 다 엄마 탓이다. 누가 그렇게 탓하는 게 아니라 누구보다 엄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다치면서 크는 거지, 아플 때도 있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엄마들도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이는 찢어진 눈두덩이를 치료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킥보드를 달라고 하더니 씽씽 달렸다. 그걸 보고 어이가 없어서 같이 울고 싶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지만, 빠르게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흉터 남지 않게 해 주세요. 시력에 문제없게 해 주세요. 제가 더 착하게 살겠습니다 기도했다.
몇 번 다쳤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는 겁이 없다. 좁고 높은 위험한 길로만 다니고 수시로 뛰어내리고 구른다. 그래도 이제는 그때보다 여유가 생겨서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어디 하나 부러지지 않고 멀쩡하게 큰다면 그건 다 엄마 덕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어본다. 네 엄마가 나쁜 마음을 먹고 싶어도 이전에 했던 기도들 때문에 기어코 착한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고. 아마 네가 열이 나는 네 아이의 이마를 만지며 착하게 살겠다 기도할 때야 내 마음을 알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