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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Dec 13. 2022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는 곳에서

스타벅스에 가는 이유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느 카페에 갈지 잠시 고민한다. 밥을 먹고 나갈 것인지, 아니면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을 것인지, 카페에서 마시고 싶은 게 잠을 확 깨워줄 맛있는 커피인지, 그저 따뜻한 마실 거리 한 잔이면 아무래도 괜찮은지. 일이 많아서 노트북 충전선을 챙겨야 하는야 하는지, 잠깐이면 되는지 등등 그날의 내 투두 리스트와 날씨 같은 것들을 종합해서 옷을 챙겨 입고 이를 닦는 동안 머릿속으로 동네 이곳저곳을 방황한다. 


유독 결정이 어려운 날에는 역시나 스타벅스로 가게 된다. 가깝든 멀든, 밥을 먹지 않았든, 노트북을 오래 할 요량으로 콘센트 있는 자리가 필요하든, 스타벅스는 그럭저럭 괜찮은 해결책이 되어주니까.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분주한 점심시간의 스타벅스는 좋아하지 않지만, 사실 내가 붐비는 실내에서 눈치 없이 엉덩이를 떼지 않더라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카운터에 줄 서있는 저 사람들은 카페라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남은 하루를 버틸 카페인을 채우러 온 것일 뿐이고, 초록색 앞치마를 입고 열심히 커피를 내리는 저들도 테이블 회전을 고민할 만큼 여유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한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스타벅스가 없던 동네에 살았었다. 그나마 가까운 스타벅스에 가려면 차로 30분을 가야 했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던 파리바게뜨가 유일한 카페였던 그곳에 드디어 작은 카페가 하나 생겼는데, 지역 여성들과 다문화 가정을 돕는 단체에서 만든 카페였다. 커피 맛이나 인테리어 취향 같은 것을 따질 새도 없이 나는 그 카페로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다. 드디어 카페가 생긴 것은 좋았지만 작은 문제가 있었다. 시골 특유의 다정함으로 거의 하루에 한 번씩은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왜 여자 혼자 여기 있는 것인지, 몇 시간씩 뭘 하는 것인지, 결혼은 했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옆 테이블 손님일 때도 있었고, 커피를 내어주시던 직원일 때도 있었고, 같은 건물 체육센터에서 수영을 끝내고 나와서 셔틀을 기다리던 주민일 때도 있었다. 여기서 방해받지 않고 커피를 마시려면 투명 인간이 되는 망토를 구해오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어 보였다. 길 건너 하나씩 스타벅스가 발에 차일 만큼 많은 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으니까. 세상은 넓고, 카페에 오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지금 사는 동네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스타벅스가 두 개 있다. 서울보다야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왜 혼자 카페에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덕분에 투명 망토 없이도 혼자 몇 시간씩 카페에 앉아 있는 호사를 누린다. 그래서 우주의 먼지처럼 어딘가 사라지고 싶을 때 나는 종종 스타벅스로 간다.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는 곳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노트북을 펼쳐 방어막을 세워두고 그럼에도 사라질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들을 헤아려 본다. 나 하나쯤 사라져도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갈 것 같은 곳에서 내 흔한 불행을 생각한다. 왜 혼자인지 묻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외딴섬처럼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이 안심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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