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글쓰기
도서관에서 작업한 지 이주일 정도 됐다.
카페가 아닌 도서관에서 글을 써서 가장 좋은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카페에 갈 수 있다는 거다.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갈 때는 아무래도 커피 맛보다는 일하기 좋은 장소를 더 선호하는데 그러다 보면 오후쯤 맛있는 커피 생각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면서 하루에 커피 두 잔이 가당키나 하나, 그냥 참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철저한 자기 객관화. '그깟 커피 두 잔 좀 마시면 어떻다고'가 잘 안 된다)
도서관에서 일하면 오후에 죄책감 없이 카페에 갈 수 있어 좋았다. 장소와 상관없이 그날 마시고 싶은 가장 맛있는 커피를 향해 직진하면 그만이었다. 커피 값도 문제였지만 내 몸이 카페인을 받아들이는 능력도 현저하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커피 메이커에 커다란 주전자 가득 내려놓고 물처럼 마셨는데, 언제부턴가 여러 잔 마시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이 울렁거려서 이제는 하루 두 잔 정도만 마시려고 한다. 한 잔은 아침 일찍이나 저녁 먹은 후 집에서 먹는 편이라 밖에서 사 먹는 한 잔의 커피에 얼마나 신중한지 모른다.
또 다른 좋은 점은 물과 나무가 있는 창 밖 풍경이다. 이 동네로 이사 온 것이 작은 호수공원과 길 건너 도서관 딱 이 둘 때문이었는데, 그때의 선택이 옳았음을 체감하는 중이다. 그리고 무선 충전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과, 열심히 강의를 듣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들 틈에서 더 집중하게 된다는 것 역시 장점이었다.
단점은 딱 하나였다. 지나치게 애쓰는 느낌. 예약해 두었던 도서관 노트북 전용 테이블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란히 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빠 보였는데 뭔가 절박한 것 같은 인상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이 답답한 분위기가 싫어서 독서실에 가지 않았는데 성인이 되어 앉아있으려니 영 어색했다. 무엇보다 너무 본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앉아 있으면 나도 자격증 하나는 쯤은 따야 할 것 같은. 그래서 가끔은 참지 못하고 노트북을 들고 나와 복도 소파에서 앉은뱅이 다리로 쓸 때도 있었다. 글은 자유롭게 풀어진 몸과 마음에서 비로소 숨통 틔우듯 흘러나왔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업이지만 일이 아닌데, 도서관에서 글을 쓸 때는 단순한 일로 변하는 것 같았다. 효율은 올라갔지만 즐거움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가볍고 나른한 바이브가 나오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단어들이 자세를 고쳐 앉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서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카페로 왔다. 집에서 나올 때만큼은 오늘도 도서관에 가리라 마음먹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노트북 석이 있는 4층이 아닌 카페가 있는 5층을 누르고 말았다. 5월은 너무 덥고, 시원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는 핑계를 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