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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누구라도 좋으니 내 이야기를 좀 들어 줘

by 장민혜

인간은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다. 그것이 애정에 대한 욕구이든, 존경에 대한 욕구이든, 돈에 대한 욕구이든지 상관없이.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을 살펴보자면, 생존에 관련한 욕구부터 애정에 대한 욕구, 소속에 대한 욕구, 자아에 대한 욕구,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수많은 학자의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를 살펴보자면 그렇다. 김필의 ‘결핍’을 들으며 나는 나에게 부족한 욕구가 무엇인지 때때로 생각하곤 한다.


우리집은 내가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는,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던 해 이혼했다. 순탄하게 이혼한 듯 보이지만, 양친은 만나선 안 될 원수가 된 채 헤어졌다. 갈라서기 전에도 몇 번이나 이혼 이야기가 언급될 정도로 두 사람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부모의 싸움에서 후순위가 된 첫째였던 나는, 애정 결핍에 시달렸다. 30대 중후반이 넘어서야 이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 전까지는 타인에게서 애정의 척도를 비교하고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타인은 결국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을 땐 내 곁의 인연을 잃은 다음이었다.


인간은 어찌하여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인지 궁금하던 때가 많았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혼자 음울하게 내 안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그러나 생은 나를 혼자 살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던 사람이 생기게 했고, 그토록 오랜 시간 증오하며 살아왔던 엄마가 암 환자가 되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기에 발버둥치던 나의 삶은 어느 순간 표류하고 말았다. 인간은 왜 표류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벗어나고 싶었던 모든 것이 나를 옥죄는 요소가 되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랑, 죽음이 가까워진 엄마, 죽을 날이 가까워진 내 고양이들……. 그런 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꾸역꾸역 참았다. 왜 인간에게 기회는 단 한 번뿐일까. 그런 생각에 ‘신’이 존재한다면 내가 어디까지 고통을 견뎌내야 하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 괜찮아졌다고 여기게 되는 순간이 오면 다시 누군가의 품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다정했던 눈빛, “누나, 손 잡아도 돼?”라고 묻던 따뜻한 목소리. 카페에 나란히 앉아 글을 쓰던 그때의 우리. 가진 게 없었음에도 ‘너’라는 존재만으로 행복했던 그때의 시간. ‘너’는 기억에서 지웠을 나와의 시간. 나는 여전히 그 시간 속에 갇혀 있어. 이걸 만약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여전히 미련을 가진 채 ‘너’라는 존재를 내 안에 품고 있다면. 어떤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빛이 바래지기도 한다는데, 왜 너와의 기억만은 몇 번의 계절을 지나도, 몇 번의 봄을 지나도 갈수록 선명해지는 것일까. 네가 내 마지막이길 바랐던 욕심 때문일까. ‘너’의 기억 속에 이제 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너의 모든 것을 곱씹어 보는 내가 있다는 걸 너는 알까.


그렇다.


이것은 애정결핍이다. 상대의 애정 척도를 측정하려 하고,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버리려고 하는 그런 상태 속에서 나는 아슬아슬하게 살아왔다. 이러한 애정 척도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김필의 ‘결핍’ 노랫말이 더 크게 와닿았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 이야기를 좀 들어줘’라고 하는 후렴구의 가사는 나의 심정과 맞아떨어졌다. 나는 어쩌면 이미 내 곁을 떠난 그가 내 마음을 들어줬으면 한다는 생각 속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헤어지고 나는 이런 시간을 보냈어. 너는 어떤 시간을 보냈니?” 어쩌면 이 질문이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했고, 너도 변했고, 나도 변했지.


왜 네 앞에서는 모든 것이 서툰 사람처럼, 모든 것이 엉성한 사람처럼 굴었을까. 나는 늘 엉망인 사람이었다. 너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걸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모든 것을 처음 하는 사람처럼 대했던 나. 그런 내가 너와 이별한 뒤 엄마의 암 치료를 할 땐 몇 번이고 암 간병을 해 봤던 사람처럼 능숙하게 굴었다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졌어. 시간이 변해서 그랬던 것일까. 나는 궁금하곤 해. 우리가 과연 그때 이별하지 않았더라면, 벚꽃이 지기 시작한 그때, 라일락 향이 만발하던 그때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삶은 달라졌을까. 우리는 별거 아닌 일로도 자주 다퉜지.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에 대해서 다퉜던 날이 생각나. ‘사랑의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아직도 그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어.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에리히 프롬이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건 알아.


하지만 말이야.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 때때로 지나치게 자존감에 휩싸인 인간인 듯하면서도, 금세 무너져 내리거든. 겉은 나를 사랑하는 척하면서도 속을 끓이며 살아가고 있어. 친구들과 부딪히는 술잔이 지겹다는 김필의 ‘결핍’ 속 노랫말도 와닿아. 너를 잊기 위해 알코올에 중독됐었고, 너를 잊었다 생각한 순간에는 정신 차리고 술을 끊었지. 이후 한두 달에 한 번 술을 마시곤 해. 내 답답한 청춘을 알코올로 위로하는 건 잘못됐다고 여겼거든. ‘누구라도 좋으니 내 진실을 물어봐줘’라는 가사가 와닿는 건 아마도 너 때문일 거야. 너에게 잘못되고 비틀린 내 삶의 잘못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야. 나는 네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에게 안부 인사를 건넸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그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지만.


언젠가 너는 나에게 그때와 같은 목소리와 눈빛으로 이야기를 건넬 수 있을까.

너라는 존재를 잃은 난 우주 속 미아가 되어 버렸는데.

왜 사람은 흐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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