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사랑에 처절한 정도로 매달려 본 기억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믿음이 온전하지 못했기에, 나를 향한 그 사람의 마음을 의심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던 인연은 이별의 말 앞에서 쉽게 무너졌다. 헤어지면 후회 따위는 없을 줄 알았다. 단 하루 만에 후회했다. 그렇게 후회할 짓을 저지르는 게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 사람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었다.
우리는 단 한 계절밖에 함께하지 못했다. 우리의 기억을 더 소중히 여겼더라면, 더 오랜 계절을 함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의 기억이 멈춰버린 봄에 나는 여전히 머물고 있다. 얼마 전은 그의 생일이었고, 우리가 헤어진 지 몇 년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언제부터 연애를 시작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면서 정작 이별의 날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니. 제자리에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를 억지로 사랑하려고 애써 본 기억이 있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비로소 나아질 것 같단 판단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생각대로 사랑할 수 없었다. 10년 동안의 휴지기 이후에 시작한 어설픈 연애. 연애를 처음 해 보는 것도 아닌데 어설펐다. 나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어설펐고, 표현하는 데 있어 어설펐고, 모든 것이 서툰 사람이었다. 그 사람 앞에 서면 첫사랑을 시작한 사람 같이 굴었다. 나는 그 사람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쉽게도 그건 나의 착각이었지만.
당시 나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모든 것이 어설프고 서툰 사람이었다. 제멋대로 구는 충동적인 나를 말릴 사람은 없었다. 약조차 나와 맞지 않는 약이었다. 먹긴 하지만 나 자신을 억제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 나는 소중한 인연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떠나보낸 건 그 사람만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 대학교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 정말 많은 인연을 떠나보냈다. 그들의 꿈에는 내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꿈에는 여전히 그들이 나온다. 우리가 함께 웃고 떠들었던 그때 그 시절 모습으로. 꿈을 꾸다 일어나면 현실이 아님을 깨닫고 허무한 마음에 천장을 올려다보곤 한다. 크림색 벽지가 발라진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내가 처한 현실이 이런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에는 왜 앵콜이 없을까.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없다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랫말처럼, 인간과 인간의 연은 한 번 끝나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 사실을 한 살, 두 살 먹을 때마다 깨달을수록 처참하게 느끼는 듯하다. 무엇도 우리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의 연은 지독하게 얽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어떤 인연도 지독하지 않았다. 지독한 건 인연에 대한 나의 집착이었다.
끝나 버린 노래를 다시 한번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아주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지금까지 연이 끊겼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그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대한 상상. 그렇게 후회를 만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특정한 시점으로 시간을 되돌려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갔음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생물학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 나이는 변해 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와 헤어지던 벚꽃이 만개했던 어느 봄날의 한가운데에, 그 친구와 함께했던 제주도의 유채꽃밭에, 그리고 어느 초여름날에……. 인연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후회만 가득 남아 이곳에서 홀로 쓸쓸히 노래하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그들에 대한 미련을 모두 떨칠 수 있을까. 가끔은 누군가 나에게 냉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해 줬으면 한다.
손님, 지나간 것들은 앵콜요청금지입니다. 시간이 다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