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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오늘도 너를 지워보려고 찾아왔어요

by 장민혜

기억을 관리하는 세탁소가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원위의 ‘기억세탁소’를 듣다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기억을 깨끗하게 씻어서 말려주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나는 어떤 기억을 선택해 지울 것인가. 기억으로 얼룩진 것 중 무엇을 택하고 지울 것인가. 나는 기억이 남긴 흔적에 집착하고 매달리는 인간이다. 그 기억이 좋았던 기억이라면 더욱더. ‘혹시라도 어딘가 네가 있을 것 같아’라는 원위의 노랫말대로 나는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며 흔적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 언젠가 오래된 친구와 절연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친구와의 추억, 그 친구와 나눴던 말은 그 말을 한 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친구는 여전히 눈이 부신 존재였고, 배우고 싶은 존재였으며, 존경하고 싶은 존재였다. 그랬기에 그 친구의 꿈을 아직도 종종 꾸곤 한다. 우리가 절연한 세월은 알았던 시간만큼 길어지고 있지만, 그 친구는 과연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항상 멋있었던 친구야, 나는 여전히 너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살고 있어.


스무 살이 막 되었던 그때 그 시절, 나에겐 무척이나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대학교에서 같은 OT조로 만나, 졸업 이후에도십여 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친구였다. 지금은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는 사실이 조금 슬프게 느껴지지만. 아무튼, 이 친구와 함께 토론하는 걸 좋아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흘러갔다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지지만, 어찌되었든 그때 고즈넉한 어린이대공원에 앉아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주된 내용과 알고 싶었던 인생에 대한 것들은 아래와 같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일정한 틀에 갇혀서 살려고 할까?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일까?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일정하게 머리를 자르고, 기준점에 맞춰 옷을 입고 다닐까.

왜 늙어서는 멋을 내면 안 되고, 멋쟁이처럼 살 수 없을까?

왜 늙어서는 염색도, 연령대에 상관없이 내가 입고 싶은 옷도 입지 못해야 할까?

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여자의 삶이 일정하게 그려지는 것일까?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 것일까?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결혼과 출산,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이 내가 태어난 진짜 이유인 것일까?

내가 특정한 성별로 나누어지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삶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두어 시간 동안 쉴새 없이 말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거의 매일을 만났고, 매일 같이 토론을 했지만, 그 토론은 늘 재미있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그 친구는 그 당시 나의 삶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옆에 누가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느라 몰랐는데, 내 옆자리에 한 중년 여성이 이 모든 대화를 듣고 계셨다. 우리의 이야기가 다시 대학교 생활로 흘러갈 무렵, 그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하셨다.


“학생들 멋지네요. 꼭 그렇게 살아요.”


지금도 종종 꿈을 꾸면 그 친구가 꿈에서 나온다. 그 친구가 짓던 특유의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그러면서 내 이름을 불러주곤 한다. 희한한 일이지. 연애하다 헤어진 이들은 꿈속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데, 내 인생에서 평생을 갈 것만 같은 사람들이 연이 끊어지면서 주기적으로 꿈속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우연히 SNS에 추천이 떠서 보게 된 몇 년 전 그 친구의 근황을 보며 “아, 잘 지내고 있구나.”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물이라는 나이로부터, 다시 스물을 더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기억하지만, 그 친구가 기억 못 하는 것들. 그 친구가 기억하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파편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그 친구를 가장 잊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어설픈 첫 습작을 강의시간에 보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던 모습 때문이다. 항상 내 모든 소설의 첫 번째 독자였기에. 내가 지금도 유명 작가가 아닌데도 글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어디선가 나의 첫 번째 독자가 내 글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친구야, 네가 날 미워했어도 괜찮아.


나는 그냥 네가 나의 모든 작품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줘서 고마웠어. 우리의 연은 이미 지나간 것을 알아. 네가 그림을 그리던 시절, 너의 그림을 좋아했고, 네가 찍은 사진 작품을 하나하나 사랑했던 내 마음은 여전하다. 네 삶에 너로 가득하길 바라고 있어, 아직도.


우리가 나눴던 말을 기억하니? 아름답게 늙자던 그 말.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니? 나는 가끔 추악할 때도 있고, 가끔은 아름답지 못한 순간도 많아. 그래,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우울증은 그때보단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수면장애와 싸우고 있고, 별거 아닌 일에도 화를 자주 내기도 해. 그런 나의 모습이 너에겐 실망스럽게 느껴졌겠단 생각을 하곤 해. 나는 아름답게 늙어 가고 있는 것 같진 않아. 그래도 아름다워지고 싶어서 노력을 하고 있어. 이제는 조금 고요해진 마음으로 가끔은 너를 생각하곤 한단다. 그러다 네가 내 소설을 읽고 눈물을 훔치던 모습이나, 미공개 원고에 대해 열띤 반응을 보여주던 제주도의 어느 밤을 생각하면, 네가 있었기에 내가 아직도 버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나의 첫 번째 독자야. 제주도는 슬슬 날씨가 오락가락하겠구나. 나는 네 삶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네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뷰파인더 속에 너만의 것을 담아가길 바란다. 네가 세상을 바라보는 그 작은 뷰파인더 속 세상이 언젠가는 더 널리 알려져 너만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기를. 네가 있었기에 내가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우리가 웃으며 사진 찍었던 유채꽃밭을 기억해 줄래. 별 사진을 찍기 위해 갔던 어느 산 속에서 들리던 노루 소리도. 네 생일이 있는 계절과 이렇게 너와 즐거웠던 초여름이 지나는 시점이면 나는 노을 진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네 모습이 가끔 생각 나. 너와 제주도는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편지는 영영 너에게 닿지 못할 테지만. 잘 지내길 바란다.


세월이 흘러 어느 순간엔가 우연히 스치게 될 수도, 어쩌면 우리의 연이 다시 닿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나는 여전히 네가 만들어 놓은 그 공백을 채우지 못한 채로 지내고 있어. 가끔은 울면서 네 이름을 부르며 꿈에서 깨어나는 때도 있고, 전 연인들마저 나오지 않는 꿈을 고스란히 채우는 너란 존재 때문에 너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겨울에 태어난 네가 푸른 여름이라는 계절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이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너에게 배우던 어설픈 필름 카메라 조작법부터, 가끔은 네 뷰파인더 속 인물이 나였다는 것이 생각나면서도, 여름에만 만개하는 능소화 아래에서 네가 찍어 준 나의 그때 그 시절 사진을 보면서도, 너는 영원히 나의 첫 번째 독자겠구나 생각한단다.


나의 첫 번째 독자야. 우리가 세월이 흘러 연이 끊어졌어도, 아름답게 늙자던 약속만은 잊지 말자.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다를 수야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에 더 집중할 수 있기만을 바라며. 마음에는 늘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무 살의 어느 날이길 바라며. 네 마음 속 푸릇함만은 영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인다.


오늘도 좋은 꿈을 꾸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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