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향
연한 초록빛
은은한 단맛
개운한 끝맛
제 아무리 값비싼 보이차를 마셔도
결국엔 녹차만 한 것이 없다.
지나치게 쓰지도 않고
무자비하게 검지도 않은 녹차
어릴 땐 어떤 면에서든 돋보이고 싶어 안달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잘하는 공부로
중학생 때는 잘 치던 피아노로
고등학생 때는 돋보이는 게 없어 그저 숨죽여 다녔고
대학생 때는 미모로
직장인 일 때는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몸부림쳤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인정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는 중년이 되었다.
그 모든 순간 인정받고 싶어 했던 소녀의 가슴에는 큰 홀이 있었다.
모든 것을 부어도 만족할 수 없었던 시절.
"사랑해, 괜찮아, 내 딸"
그 세 마디면 충분했었는데
그 세 마디가 부재해서
시절마다 진한 에스프레소를 그 홀에 쏟아 넣었다.
허기진 영혼에 돌파구였던 기독교 신앙에서
결핍을 채우려 했던 수많은 연애에서
정처 없이 떠돌던 타국의 여행에서
방랑을 멈추었다.
전생같이 느껴지는 쓴 과거 속에도
푸릇하고, 달근하고, 담박한 추억이 있었음을 기억해 낸다.
적당히 구수하고
적당히 달큰하고
적당히 쓴 녹차 한잔이 질리지 않는 이유다.
"녹차는 말이지, 느긋한 사람들의 음료야. 빨리 마시려 하면 쓰기만 하지."
— 《카모메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