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에 저장된 예전 사진들을 볼 때가 있다. 보통은 사진 정리나 업무적으로 필요해서 확인하게 되는데 재밌게도 그 행위가 마치 어렸을 때 장롱 구석에 있던 사진첩을 꺼내 볼 때와 비슷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신기하다. 온라인 서버에 저장된 사진을 모니터로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어렸을 때 실물 사진을 바라볼 때와 같은 감정을 갖게 되다니.
첫째 딸 돌잔치로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 사진을 봤다.
그때 참 힘들었지. 집도 없이 돌쟁이 아기 데리고 여기저기 옮겨 지내느라
양가 식구들 인사드리고 남는 시간에 친구도 만나고 와이프 원하는 서울 구석구석 예쁜 카페도 가보고 이것저것 할 일들로 2주 간의 짧은 여행이 순식간에 지나갔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본인 확인이 가능한 번호가 없으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불과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것뿐이었는데 너무 많은 것이 변해 있었음에 놀란 기억이 난다.
기억 뒤 쪽에 있던 조각들이 당시의 사진을 보면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선명해진다. 그럴 때 내가 누리는 것은 그 당시의 객관적인 기억 또는 사실이 아니라 그때를 기억함을 통해 나에게 오는 그때의 감정인 것 같다. 결국은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내가 간직하고 싶은 감정만 남는 걸 수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나를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문득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랜덤 한 사건을 목격했을 뿐인데 아무 관련도 없는 예전의 아주 개인적인 일이 떠오를 때.
아이랑 하루 종일 집에서 이런저런 일로 씨름하다 보면 사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육아를 끝내고 애를 침대에 눕히고 거실로 나오면 두세 시간의 짧은 자유를 누리다 지쳐 쓰러져서 잠에 드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얼마 전 장모님께서 저녁에 애를 잠시 봐주셨다. 그 참에 컴퓨터 켜고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예전 사진을 봤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예전 우리 딸 사진.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오늘 본 그 아이가 지금 모니터로 보이는 이 아이와 같은 사람이 맞을까. 말도 안 되지만 한 번 해봤다.
아기들은 어떨 때 웃고 어떨 때 울까. 어떻게 그 감정을 알고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아기가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볼 때면 우리는 태어날 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이미 알고 태어나는 것을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결국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것은 예전의 기억이다. 축적된 기억의 두께로 우리는 오늘을 보낸다. 그것을 인식하던 인식하지 못하든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