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요리에 이야기가 있어
오늘은 뭐 먹지? 매일의 과제처럼 저녁 5시가 되면 고민의 시간이 찾아온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메뉴들을 쭉 나열해 보는데 확 당기는 음식이 없다. 정말 누가 대신 식단 좀 짜주면 좋겠다.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식재료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집게 되는 재료들은 자연스레 손질하기 쉬우면서도 익숙한 것들로 구성된다. 한정적인 레퍼토리를 가지고 겨우 돌려막기 해가며 버티고 있지만 단조롭고 비슷한 맛에 슬슬 지겨워진다. 그동안 시도해 보지 않은 새로운 식재료를 탐구할 때가 왔다.
내가 마트에서 가장 발길을 주지 않는 코너가 해산물 코너다. 남편 무민 군이 해산물보다 육류를 더 선호하기도 하고 손질이 되어있어도 어쩐지 손에 잘 집지 않게 되는 아우라가 있다. 비릿한 향을 내뿜는 생선들 사이를 지나 투명한 봉지에 들어있는 조개가 눈에 띄었다. 슬며시 봉지를 쿡 눌러보니 쏙 내밀고 있던 속살을 감추고 입을 꽉 다물었다. 살아있군. 으으으… 보이지 않는 눈이 마주친 것 마냥 기시감이 몰러왔다. 그래도 바지락 칼국수 한 번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한데.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바지락조개를 1kg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옆에 자그마한 200g 짜리도 있었지만 이걸로 누구 코에 붙이냐 하며 호기롭게 큰 걸 택했다.
집에 돌아와 바지락을 냉장고에 넣어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패류라 최대한 빨리 요리해 먹어야 했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부터 내일까지는 삼시세끼 바지락 편을 찍어야 할 것 같다. 남편 무민 군의 동의를 얻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식탁의 주인은 요리하는 사람 마음이니까.
첫끼는 바지락 칼국수로 정했다. 생면을 사다가 바지락이랑 같이 후루룩 끓이면 되겠지. 미리 해감을 해놓은 바지락을 흐르는 물에 씻어 내 남아있는 모레가 있을까 싶어 조개만 따로 끓였다. 양파, 애호박, 감자를 길쭉하게 썰어내고 육수에 생면과 함께 익혀내면 끝. 푸짐하게 들어간 바지락 양에 조개껍데기가 수북이 쌓였다. 생면에 붙어있는 밀가루를 잘 털어내지 못해서 육수가 생각보다 많이 걸쭉하게 되었지만 후루룩 말도 않고 열심히 먹는 남편 무민 군 모습을 보니 꽤나 맛이 있기는 한가보다. 예상보다 조리가 쉬워서 날이 서늘해지면 종종 해 먹으면 좋을 듯싶다.
두 끼는 남편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봉골레 파스타로 정했다. 혹시 모를 조개에서 풍기는 비릿함을 잡아내려 마늘을 넉넉하게 사용했다. 편 마늘과 다진 마늘을 써서 맛과 향을 마늘향으로 휘어잡고, 올리브 오일을 넉넉하게 둘러 바지락과 함께 볶았다. 배부르게 먹고 싶다는 무민 군의 주문으로 면은 곱빼기로 넣고 면수도 자작하게 넣고 아주 약간의 고춧가루를 뿌려 느끼한 맛만 살짝 잡아주면 완성. 프라이팬 가득 휘젓기 힘든 양의 파스타에 웃음이 터졌다. 먹어도 줄지 않을 것 같은 비주얼이었지만 두 배에 불룩하게 자리했다. 레스토랑에서 파는 멋스러운 맛은 아니었지만 오일로 코팅된 두 입이 풍족했으니 만족했다.
마지막 끼니는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싶다. 연속으로 면을 먹었더니 밥이 먹고 싶어졌다. 칼칼한 맛의 바지락 순두부찌개를 해야겠다. 양파, 파를 다지고 냄비에 충분한 기름과 함께 볶는다. 달콤한 향이 올라와 코를 간지럽히는 때에 바지락을 넣어 살짝 더 볶아낸다. 기름 코팅이 충분히 되었다면 고춧가루를 넣어 볶아진 기름이 고추기름이 되도록 섞어준다. 이때 고춧가루가 열로 인해 타지 않게 불을 끄고 섞어주어도 좋다. 빨갛게 물든 냄비에 물을 붓고 보글보글 끓여 간을 맞추고 원하는 야채도 넣어준다. 마지막에 순두부를 넣으면 바지락 순두부찌개 완성이다. 좀 더 매운맛을 원하시면 고추를 더 썰어 넣으시면 좋다. 고슬고슬한 밥에 찌개랑 비벼가며 먹으니 꿀맛이 따로 없다. 역시 나는 면보다 밥이야.
삼시세끼 바지락 편을 마친 오늘 해산물 코너에 퀘스트를 깨 나의 요리에 한 단계 레벨업 된 기분이다. 손도 못 댈 재료들이 아직은 많지만 가능한 것부터 시작해보기로 한다. 하나의 도전이 나의 요리 리스트를 풍성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