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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보라 Oct 20. 2021

나는 항상 카레를 만들 때마다 눈물을 흘려

내가 만든 요리에는 이야기가 있어

나는 항상 카레를 만들 때마다 눈물을 흘려


  오늘도 어김없이 눈물이 흐른다. 결고 원해서 흘리는 건 아니다. 두 눈을 가득히 적신 이유가 적어도 슬픔 때문은 아니라는 거다. 지독하고 얄미운 공격에 오늘도 졌을 뿐이다. 한 개를 다 채 썰기도 전에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매콤한 공격을 당해버렸다. 주먹만 한 게 어찌나 매운지. 두 볼을 촉촉이 적신 후에야 가격이 잦아들 었다. 눈물까지 흘려가며 양파를 두 알이나 썰어낸 건 달달한 카레를 만들기 위함이다. 매번 먹는 반찬도 지겹고 집에서 먹는 한식이 물려 갈 때쯤 떠올려지는 카레. 든든한 메인 몫을 톡톡히 해주는 카레에 정성을 안 들일 이유가 없다. 냄비에 채 썬 양파를 기름을 두르고 15분에서 30분 정도 불 앞에서 볶아내면 캐러멜처럼 구운 색의 단맛이 가득한 캐러멜 라이즈 된 양파를 만들 수 있다. 글로는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완성되지만 결고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양파 아린 매운맛을 불의 노고를 견디어 달콤한 맛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계속 달궈지는 냄비에 양파가 들러붙지 않게 하려면 한시도 손을 놀리면 안 된다. 불도 조절해가며 타지 않으면서 익히는 과정이 불 앞을 잠시도 떠날 수 없게 한다. 양파의 형태는 사라지고 맛있는 맛만 담아낸 냄비에 어울리는 야채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물을 부어 보글보글 끓여 내 스르륵 노란 가루를 뿌려내면 엄청난 맛이 비밀을 머금은 보드라운 빛의 카레가 완성된다. 


 달달하면서 훈훈한 카레향이 집 안 가득하다. 평소와는 다른 새로운 재료들이 들어와도 깊은 포옹으로 감싸 안아주는 포근함. 그 속에 우주 같은 노력을 내색도 하지 않고 묵묵히 노란 자태 만으로 뽐내는 녀석. 도통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임이 분명한, 우직하고 이해심 넓은 심지어 은은히 타국의 향기마저 흐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이 매력. 특별한 반찬 없이도 독보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혼자서도 한 끼를 만들어 내는, 노랗고 진득한 소스에 총총 박혀있는 야채와 밥이 뒤섞여 떠먹으면 입안 가득 풍족하게 해주는 맛. 한 냄비 넉넉하게 카레를 끓여두면 다음 날까지 마음이 든든하다.

 은박 봉투 안에 들어있던 인스턴트 카레도 그 옛날 찬장 안에 가득히 쌓여 딱히 입맛이 없을 때마다 꺼내먹던 기억이 떠오른다. 맞벌이 부부인 부모님을 대신해 낮에는 남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에 겨우 두 살 터울이지만 어린 부모 행세를 하곤 했다. 그중에서도 밥을 챙겨 먹이는 일이 매우 중요했는데, 각자 국그릇에 양껏 밥을 퍼 인스턴트 카레를 부어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던 그 맛. 엄마가 집에 없는 시간에 잘 챙겨 먹지 않아 걱정이 큰 엄마에게 인스턴트 카레는 내심 고마운 존재이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스스로 빼놓지 않고 한 끼를 잘 챙겨 먹는 모습에 찬장에는 늘 카레가 떨어지지 않았고 전자레인지 안에도 카레향이 은은하게 배겨갔다.   


 바지런히 일을 하고 돌아온 남편 무민 군에게 달콤한 냄새가 먼저 마중을 나간다. 오목한 접시에 담겨 뽀얀 밥 위로 카레 이불을 덮어 담아내는 한 끼. 평소보다 넉넉하게 준 밥까지 깔끔하게 비어낸 빈 접시를 보며 다시 요리를 할 에너지를 받는다. 얼굴이 벌겋게 달라올라도 눈물이 앞을 가려도 맛있게 만들어질 수 있다면 이깟 것쯤이야. 아, 이게 사랑이 아니고 무엇 이랴. 나에게 있어 카레를 요리한다는 건 사랑을 뭉근히 녹여내는 일이야. 거창하게 들어내고 싶지는 않지만 수줍게 보여주고 싶은 사랑이야. 향신료의 훈훈함 때문인지 내가 녹여낸 사랑 때문인지 너도 나도 온몸이 따뜻한 온기로 꽉 차 두 볼이 발 그래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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