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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보라 Oct 18. 2021

아빠의 생일상

내가 만든 요리에는 이야기가 있어

아빠의 생일상 


아빠의 3주기. 우리 가족은 각자마다 원하는 방식대로 아빠의 기일을 지내기로 했다. 강직한 신자로 남아있는 엄마는 미사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여겨 아빠의 이름으로 미사예물을 봉헌하는 방식으로, 동생 부부는 주말 몇 가지 음식을 챙겨 산소에 찾아뵙고 묏자리를 살펴보는 것으로, 바다 건너 신혼살림을 꾸린 나는 이곳에서 격식 없는 제사상을 차려보기로 했다. 첫 기일에는 날짜를 음력 양력 중 어떤 날로 지정할지도 각자 의견이 분분했다. 서로 지내고 싶은 방향이 달라 틀어진 의견 차이만큼 못마땅히 여기기도 했던 시간이 지나 지금은 그 서로의 방향을 서로가 인정해주고 있다. 3번에 나눠서 받으니 아빠는 바쁘지만 좋기도 하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혼자서 처음 준비해보는 제사상에 어떤 음식을 차려드릴까 고민을 하다 아빠의 생일상을 한 번도 차려드린 적이 없어 늘 후회스러운 아쉬움이 들었는데 작게나마 차려드려 보기로 결정했다. 생일상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들고 마트에서 어떻게 구성을 할지 하나하나 고민해 가며 바구니를 채웠다. 

“국은 미역국을 하고,  전은 동그랑땡을 하고, 잡채도 했으면 좋겠는데…. 과일은 샤인 머스켓 하나 사봐야겠다. 비싼 만큼 맛있겠지. 술은 맨날 소주 드셨으니 오늘은 막걸리를 사볼까? 더 필요한 게 있나?”


시간을 보니 아무래도 저녁식사 때까지 마무리하려면 서둘러야 할거 같아 내 점심은 커피 한 잔으로 때우고 오늘의 일터로 향했다. 한쪽에선 미역을 불리고 볶고 끓이고, 그 옆에 도마 위는 쉴 새 없이 동그랑땡 속재료를 다지기를 반복했다. 두부 물기를 꽉 짜고 다진 고기에 다진 야채들을 전부 섞어 간까지 맞추고 미리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 붙이기 편하게 준비를 해두었다. 아직 전을 굽지도 못했는데 중천에 있던 해가 점점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호기롭게 세 종류의 전에 잡채까지 하려 했는데 쉽지 않아 보였다.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하자. 밥솥에 쌀을 씻어 새 밥이 되도록 취사 버튼을 누르고, 이제 전 굽기에 모든 총력을 가 할 차례가 되었다. 밀가루, 풀어놓은 계란, 기름이 듬뿍 담긴 프라이팬 사이를 무한이 오가며 묻히고 올리고 뒤집어 가며 나와 주방이 밀가루와 기름 파티에 온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만들어낸 동그랑땡은 전혀 동그랗지 않았고 떡갈비 버금갈 만큼 크고 처음에 구워낸 전은 연한 갈색 빛이 돌다가 뒤로 갈수록 타기 직전의 색으로 변모했다. 자꾸만 튀기는 기름에 손도 아프고 내 마음도 아프고. 

겨우겨우 동그랑땡, 호박전, 배추전까지 채우고 나니 남편 무민 군이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무민 군 손에는 아빠 제사상에 올릴 피자가 들려있었다. 

 “아버님도 피자 좋아하시겠지?” 


 격식이 넘치는 푸짐한 상차림은 아니지만 밥과 국에 방금 만든 전, 과일, 술 그리고 든든하게 자리를 채워주는 피자까지 올려놓으니 나쁘지 만은 않았다. 갈비찜에 잡채까지 내드리면 좋았을 텐데 내 실력이 아직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이제 겨우 주부 2개월 차에 접어든 새내기일 뿐이었다. 아이패드에 아빠 사진을 띄워 가운데 세워 두고 막걸리 한 잔 따른 뒤 맛이 없더라도 내가 진짜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다 먹어야 한다는 작은 협박과 함께 절을 올렸다. 일 년에 한 번 온전히 아빠를 마주하는 시간. 아빠를 생각하면서도 슬프기는 싫어 바쁘게 보낸 하루.   


 정말 아빠는 내가 만든 음식을 다 먹고 갔을까? 내가 골라온 사윗감은 진심으로 맘에 들었을까? 나의 새로운 가정을 아빠가 정말 축복해줬으면 좋겠는데. 앞으로의 이야기 내년에 다시 만나서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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