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요리에는 이야기가 있어
지금이야 세상에 온갖 맛있는 것들의 유혹에 눈을 떠 버린 소인배 중에 한 사람이지만 웬만한 사람들보다 입이 짧아 어릴 적 참으로 많이 엄마의 속을 까맣게 태워먹은 그 당시의 나조차도 눈앞에 있기만 해도 군침이 돌고 입에 넣고 싶어지는 음식이 있었다. 만두. 그중에서도 집에서 만드는 둥글고 투박하게 생긴 손만두를 배가 부르도록 먹어도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좋아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한 집에 대가족을 이루며 살 적에는 설 명절에 꼭 해야 하는 음식 중에 하나이기도 해 추석보다 설날을 더 기쁘게 반겼다.
흐릿하게나마 남은 그 당시 풍경을 떠올려 보자면 큰 식탁에 온 가족이 모여 아빠가 밀대로 얇게 밀가루 반죽을 밀어주면 스댕(그 당시 할머니가 쓰시던 단어를 착용했다) 국그릇으로 동그란 만두피를 꼭꼭 찍어낸다. 그 바로 옆에서 할머니, 엄마, 나와 동생은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는 만두 속을 숟가락으로 푹푹 퍼가며 만두를 빚었다. 동생과 나는 어른들의 손끝을 따라 해 보려다 이내 소꿉놀이하듯이 피 두 개를 겹쳐 왕 주먹만 한 만두도 만들어내고 하트 모양, 세모 모양, 각양각색의 만두를 만들며 한 쟁반을 가득 채워내 뿌듯함과 즐거움이 번지는 기억으로 자리한다. 만두를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음 난 소질이 없으니 내 딸은 그리 예쁘지 않겠군 하고 무던하게 넘겨 생각하는 아이이기도 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마트에서 만들어진 만두피를 살 수도 있고 만두 맛집도 많아져 언제든 먹고 싶다면 사서 먹으면 되는 시대에 살지만 조금 과장해서 주먹만 한 크기에 몇 개만 먹어도 배부를 것 같지만 담백한 맛에 한없이 입에 들어가는 그 맛을 느낄 곳이 없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허나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서 만들자고 하지 않는 이유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훌쩍 지나 보니 어느새 가족이 단출 해져 있었다. 큰집으로 지내면서 와글와글 많은 사람이 오가며 지내는 게 명절이라고 여기던 때를 지나 엄마와 나 단둘이 보내는 시간도 오는구나. 이제는 명절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엄마는 선언을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무것도 와 엄마의 아무것도 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당일에 올 동생네 부부랑 먹을거리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 몇 개랑 갈비찜이랑 잡채랑 뭐랑 뭐랑 끊이지 않고 나오는 음식 리스트에 아찔 해져갔다. 큰집 살림을 오래 한 엄마의 손 크기를 대략 짐작만 해도 네 식구가 먹을 만큼의 음식 규모가 아니었다. 제발 먹을 만큼만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앞만 보고 무조건 달려 나가는 엄마를 진정시켜보려 애를 썼다. 단 둘이 보내면 좀 고요하게 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손님만 없다 뿐이지 지지고 볶는 건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
엄마가 얼마나 장을 봐올지 알 수 없는 마음에 감시자 역할로 장보기를 자처하고 따라나섰다. 엄마의 뒤를 따라 카트를 밀며 안에 담기는 재료들의 양을 가늠해 요리의 양을 가늠해 보지만 요리 초보자가 봐서는 알 길이 없었다.
“설인데 그냥 만둣국이랑 갈비만 먹으면 안 될까? 음식도 우리 둘이 다 해야 하는데 언제 하냐고.”
“그럼 만두를 할까? 딸 만두 좋아하잖아.”
어? 만두를 한다고? 엄마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만두피 몇 개를 집어 카트에 담았다. 여자 둘이 들기도 벅찰 만큼 장을 바온 뒤 엄마는 곧바로 재료 손질을 했다. 마트만 다녀왔을 뿐인데도 난 벌써 이렇게 진이 빠지는데 어디서 솟아나는 체력인지 도통 알 수 없다. 뚝딱뚝딱 경쾌한 칼 소리에 금세 다듬어지는 재료들을 옆에서 지켜보다 엄마가 내어주는 미션에 맞춰 몇 가지 퀘스트를 깨고 마법의 수프를 만드는 마녀처럼 눈대중으로 간을 마치는 엄마의 손길 뒤로 재료들을 휘휘 저어 주고 나니 금세 만두 속이 완성되었다. 김치 통 하나에 채워져 있는 속을 보며 또다시 이걸 언제 다 빚어내지 걱정 한 스푼 내가 만든 만두를 다시 먹어볼 수 있겠다는 기대 한 스푼을 더해 천천히 빚어내기 시작했다.
둘이서 시간도 많으니 두런두런 온갖 추억과 기쁨과 슬픔이 묻어나는 이야기보따리가 풀렸다. 특히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 엄마의 젊음이 가득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제일 좋아한다. 같은 도시에서 엄마의 학생 시절 때의 그 공간은 늘 새롭고 신선한 모습들이 너무도 많았다. 지금은 수많은 차가 지나가는 길이 엄마의 공간에서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빨래를 하러 이 천을 이용하기도 했다는 그 모습은 나에게는 엄마의 이야기 없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첫 취업 기념으로 동대문에 있는 양장점에서 투피스 두벌을 맞추는 엄마의 옷이 생긴 기념비 적인 날도, 종로에 나갔다 대규모 대모로 인해 버스가 끊겨 집까지 몇 시간을 걸어서 돌아와야 했던 이야기도 모두 엄마의 입을 통해 나에게 들어왔다. 이야기는 흘러 며느리의 고단하고 서글펐던 내가 존재하지만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으로 건너가 있었다. 엄마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나의 이야기는 사실 언제나 들어도 또 듣고 싶어 지는 이야기다.
이야기 짐을 쉴 틈 없이 풀어내니 만두 보따리가 식탁이 비좁아질만큼 쌓였다. 허리도 어깨도 결리고 주방이 온통 밀가루 투성이지만 뜨거운 증기로 익어지는 만두를 보고 있으니 입은 금세 흐뭇하게 지어지고 있었다. 저녁시간도 훌쩍 지나 방금 쪄진 만두로 저녁을 대신하기로 했다. 너무나도 뜨거운 걸 알면서도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손으로 만두를 들썩거리고 후후 불어가며 입으로 직행했다. 아 정말 뜨거운 추억의 맛이다. 다 쪄낸 이야기에는 동그랗게 잘 빚어지기도 욕심을 부려 많이 담아 흘러넘쳐 터져 나와 있기도 했다. 곱게 잘 나온 보따리만 골라내 나누어 먹을 만큼 통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 두고 터져버린 것들은 엄마와 내 입 속으로 돌려보냈다. 맛은 같은데도 예쁘고 좋은 모습만 남기고 싶은 건 이야기나 요리나 비슷한 듯하다.
못난 것만 담긴 접시에 또 다른 이야기를 곁들여 가며 배를 채웠다. 이번에는 나도 기억하는 이야기 들이었다. 엄마의 그림체와 나의 그림체가 좀 다르지만 서로의 것들을 공유하며 이야기 퍼즐을 맞춰갔다. 역시 만두는 먹어도 먹어도 계속 먹고 싶어지는 요리가 맞다. 들어도 들어도 계속 듣고 싶은 이야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