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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보라 Oct 09. 2021

베이킹이라는 세계

내가 만든 요리에는 이야기가 있어

베이킹이라는 세계


 빵순이라면 한 번쯤 내가 좋아하는 빵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 보았을 것이다. 생크림이 장판처럼 반질반질 덮여있는 케이크는 못돼도 조개 모양의 마들렌과 같은 구움 과자나 투박한 모양의 홍차와 짝꿍인 스콘을 먹다 보면 나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스친다. 때마침 친척 언니가 보험가입 후 받은 오븐을 애물단지처럼 모셔두고 있는데 필요하면 가져가지 않겠느냐는 소식을 보내왔다. 무엇이든 구워보자는 심산으로 집에 들인 오븐은 예상보다 크기도 크고 투박해 그 위용을 과시했다. 자리 하나를 떡 하니 차지한 오븐에 어서 빵내음으로 활기를 심어주고 싶었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요리 코너 매대로 향해 책 표지부터 보기만 해도 광택이 흐르는 빵 사진으로 유혹하는 베이킹 레시피 북을 하나 골라 레시피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스크래퍼를 이용해 자르듯 섞어줍니다.’ 자르듯 섞는다는 말이 뭐야? 글라세는 뭘 말하는 거지? 오븐만 있으면 뭐라도 금방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예상하지 못한 도구들도 꽤 필요해 보였다. 빵을 만든다는 건 다른 행성의 언어를 배우는 거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면 빵이 아니라 누구 입에도 넣을 수 없는 외계에서 건너온 알 수 없는 것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해 보였다. 직접 한번 배워보는 게 실패에서 멀어지겠다 싶어 여러 베이킹 클래스를 찾아보다 내가 좋아하는 빵들로 구성된 초보자에게 어렵지 않은 코스가 눈에 들어와 빠르게 신청을 해보았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분주하게 근무를 시작했을 평일 오전, 처음 마주하는 동네의 한산한 듯 각자의 일과에 집중하며 움직이는 오전의 풍경을 지나치며 들어선 클래스 장소에는 밝은 배경에 널따란 바를 사이에 두고 강사님과 수강생들이 모두 앞치마를 두르고 자리해 있었다. 말끔하게 준비된 도구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량된 재료를 앞이 두고 시연을 시작한 강사님 주변으로 한 순간 집중되는 모습들 사이에 나는 멍하게 서서 사태를 빠르게 파악하려고 최대한 애를 썼다. 몇몇 분이 핸드폰 동영상으로 강사님의 시연하는 손을 찍는 걸 포착해 서둘러 핸드폰 동영상을 켜 그 뒤를 따랐다. 허나 이미 강사님의 손은 레시피 2번에서 3번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중간에 잘 이해를 못한 단어들이 튀어나오면 옆 사람들도 나와 같은지 눈치를 살펴보지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종이에 메모를 쓱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뭐지 초보자도 어렵지 않은 코스라고 분명히 그랬는데…, 나만 모르는 이 분위기는 뭐지? 

 정말 순식간에 시연이 끝나고 실습 테이블로 이동해 각자의 자리에 준비된 재료와 도구로 방금 시연에서 보고 온 레시피를 떠올리며 빵 반죽을 만들어야 했다. 옆자리의 수강생의 행동을 곁눈질로 따라 하며 도구를 비슷하게 휘저어 보지만 누가 봐도 처음 만져보는 사람의 행동이었다. 강사님이 돌아가며 틈틈이 지도를 봐주시는 와중에도 내 반죽은 점점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었다. 아, 강사님 이 것이 정녕 지구의 것이 맞는가요. 쩔쩔 매가며 허튼 손짓을 첨가해 어떻게든 완성이란 것을 한 반죽을 강사님께 넘기고 자리로 돌아오니 맥이 쭉 빠졌다. 나는 방금 무얼 한 건가. 영혼이 저편으로 건너 가려는 찰나에 방금 구워진 달콤한 빵이 접시 위에 올려져 다가오고 있었다. 수강생들의 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강사님이 시연한 빵이 다 구워져 미리 맛보는 시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은 방금 나온 빵이 확실했다. 부드럽고 따끈하고 포슬 하고 달달함이 입 안을 가득 매우며 위로가 필요한 내 등을 토닥토닥해주는 맛. 함께 나온 차와 함께 먹으니 스르르 입에서 녹아내렸다. 이렇게나 맛있는 맛을 내가 만든 빵은 과연 얼마나 닮았을지 기대 반 우려 반 섞인 마음으로 디저트 타임을 즐기다 보니 수강생들 마다 사담이 오고 갔다. 개인 카페에서 디저트를 직접 만드시려고 이미 몇 차례 클래스를 듣고 계신 사장님, 방학이라는 틈을 이용해 베이킹이 배워보고 싶어 신청했다는 대학생, 심지어 태교를 위해 클래스를 신청한 임산부도 계셨다. 그러고 보니 방금까지 함께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은 전부 여성들이었다. 그리고 방금 막 구워진 수강생들의 빵을 들고 나타나신 강사님도 두 아이를 두 신 엄마이자 여성이었다. 그 순간 강사자와 수강생으로 만 보이던 이들이 누군가의 엄마, 아내, 딸로 보였다. 무언가를 열심히 마치고 환하게 웃으며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이 순간 달콤한 빵 위에 뿌려진 슈가 파우더처럼 빛나 보였다. 세상의 바퀴를 굴리는 일을 하는 회사라는 곳 이외에도 세상을 굴리기 위해 열심히 돌아가는 곳들이 있구나. 크기가 작던 크던 상관없이 자신이 돌릴 수 있는 바퀴를 열심히 굴리고 있었구나. 내 작은 바퀴도 어딘가에 잘 맞춰 신나게 굴릴 수 있는 곳이 있겠구나.


 그 뒤로도 몇 번의 클래스를 연이어 들으면서 나는 이 세계의 다양한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은 예상보다도 더 훨씬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고, 이곳에서 서로가 공감하는 고단한 마음을 나누면서도 치열하게 배워나가고 또다시 자신의 자리로 빠르게 돌아갔다. 누군가에게는 취미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생업이기도 한 이곳. 그저 맛있는 빵 만드는 법을 배우러 갔다가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법을 배우고 온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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