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요리에는 이야기가 있어
전기포트에 물을 부어준다. 빨간 불과 함께 아주 작은 소음이 일어난다.
차 통에서 날씨와 기분에 맞는 차를 찾느라 휘적거리는 사이,
포트에서 물방울이 부글부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뜨겁게 달아오른 신호를 보낸다.
오묘한 청록색을 띤 귀품 있는 티 캔 안에 검게 말려 있는 찻잎들.
너무 작지도 너무 길지도 않은 길이의 잘려 있는 잎들이 뿜어내는 향으로 맛을 가늠해 본다.
토로록 찻잎과 유리가 부딪혀 내는 소리. 그 사이를 비집고 뜨겁게 끓어오른 물을 경쾌하게 부어준다.
흐르는 물살을 타고 유영하듯 빙글빙글 찻잎이 돌아다니다 보면 붉은 노을처럼 물 색이 변해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찻물의 적절한 타이밍을 읽어내 따듯하게 데워진 작은 잔에 영글어진 노을을 담는다.
나만 아는 찰나의 정성도 함께 담아내 보려 잔에 조금 더 기울인다.
차 한 잔에 핀 조명이 켜지고 주변이 고요해지고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잔 속에 고소한 듯 쌉싸름한 단풍이 느껴지기도 하고, 톡쏘듯 화하게 숨어있는 꽃향을 발견할 때도 있다.
카랑카랑한 드넓은 대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향신료의 나라 인도의 한 복판에 나를 새워두기도 하고,
스산한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새벽의 이슬이 맺힌 다원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이 차를 함께 나눈 이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평생 나눌 수 없는 이를 떠올리기도 한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내 마음을 건드려보기도 하고 멀리 떠나보기도 한다.
그 무엇도 떠올리기 힘들 땐 잔 속에 있는 찻물을 그냥 하염없이 보고만 있기도, 무념무상을 바라기도 한다.
반짝거리는 기쁨이 비치기도 떨어지는 눈물이 비치기도 한다.
크지도 않은 잔 속에 수많은 날들을 담아내고 삼킨다.
한 모금 한 모금에 찬찬히 비워지는 잔을 만지면서 얕은 잠에서 깨어나듯 나의 현재로 돌아간다.
주변의 감각을 깨우며 지금 흐르는 시간의 빠르기로.
빈 잔에 아스라이 남겨진 향을 흐르는 물에 쓸려 보내고, 내가 꾼 꿈도 같이 흘려보낸다.
말끔히 설거지를 하고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잔을 행주로 닦아내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낸다.
내가 오늘 꾼 꿈이 황홀경인지 그리움인지 쓸쓸함인지 잔은 이제 모른다. 다음을 기다릴 뿐이다.
전기포트에 물을 부어준다.
차를 찾느라 휘적거리는 사이,
시간이 다시 느리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