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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보라 Sep 28. 2021

밀크티 (feat. 모닝 토스트)

내가 만든 요리에는 이야기가 있어

 밀크티 (feat. 모닝 토스트)


 선풍기를 쉬는 시간 없이 팽팽 돌리던 시기를 지나 창문을 타고 아직은 실오라기 같은 선선한 바람이 들어온다. 따가운 햇살은 여전하지만 바람은 확실히 그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이스 음료를 위해 냉동실에 매일같이 부지런히 얼려 넣어 둔 얼음틀도 조금은 느슨하게 일을 시켜도 되겠다. 장 안에 들어있는 바라만 보아도 멋스러운 바바리코트며, 도톰한 재킷, 포근한 카디건까지 언제 입게 될지 상상하며 아직은 이른 마음을 다독여본다. 


 가을,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도래한 이 시기의 설렘을 가장 빠르게 느끼고 싶은 땐 보글보글 끓인 밀크티 만한 것도 없다. 이제는 사시사철 잘 나가는 대중적인 음료가 되었지만 고소하고 묵직한 우유와 진하게 우려 지는 홍차로 만들어진 보드라운 밀크티는 바로 이 계절에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중에 하나다. 찬장 안에 더운 여름을 피해 잠을 자고 있던 손만 한 법랑 밀크팬을 꺼내고, 밀크티에 어울릴 만한 홍차를 고르는 것부터 흥겨워진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홍차를 쓸지, 향긋한 베르가못트향이 배어있는 얼그레이를 고를지, 정신 번쩍 차릴 진한 맛의 아쌈 홍차를 꺼낼지 행복한 고민을 한다. 이때에 정답이라는 길은 없다. 그저 그날의 기분에 끌리는 대로 끌려가는 것뿐. 다 년간 나의 아침을 함께 했던 밀크티는 나의 소울메이트 이기도 하다.

 아침에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들다가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밀크티 한 잔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면 위가 따뜻해지면서 배고픔이 찾아온다. 빈속에 카페인은 위에 무리를 준다고 옆에서 무민 군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쳐다보지만 밀크티 없는 하루는 활력을 잃어버린 하루라고 나 할까? 고요한 주방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밀크티 향에 몸도 깨고, 정신도 눈을 뜬다. 꼬르륵, 배에서 배고픔의 신호를 빠르게 내비칠 때면 밀크티와 함께 먹을 토스트를 굽기도 한다. 냉동칸에 얼려둔 식빵을 꺼내 빵 한쪽을 굽고, 양배추와 계란 한 개를 꺼내 양배추는 잘게 썰고 계란과 함께 섞어준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아주 살짝만 해서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구워준 후 식빵 위 잘 포개 주면 된다. 위에 케첩을 지그재그 뿌려 반을 딱 접으면 모닝 토스트 완성! 따뜻한 토스트 한 입에 밀크티를 곁들이면 아침에 입맛이 없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 되어버린다.

 모닝 토스트는 여러 시도를 해보다 지금의 간단한 레시피로 정착했다. 아침은 뭐니 뭐니 해도 간편한 게 제일이다. 가끔 냉장고에 남은 채소가 있거나 슬라이스 치즈도 있고 크림치즈까지 꺼내는 날이면 좀 더 정성스러운 토스트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여유로운 주말의 특식처럼 여겨진다. 밀크티도 끓이기 번거로운 날에는 머그컵에 반쯤 티백 홍차를 뜨거운 물에 우리고 찬 우유를 부어준 후 전자레인지에 재빠르게 돌린다. 1분 땡!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향의 연기가 핀다. 


따뜻하게 데워진 머그컵 안에  노르스름한 빛깔을 띈 고소한 밀크티. 불이 만들어낸 따스함이 고마워지는 계절.  아주 작은 변화 지만 간사할 만큼 마음이 벌써 달라져 있다. 폭신한 슬리퍼에 도톰한 옷을 걸쳐 입고 추위를 몰아내려 후후 불어가며 마시는 그날이 성큼 와주기를. 그날이 지겨워질 때쯤 이면 분명 얼음잔 안에서 찰랑 거리는 얼음 소리가 듣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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