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요리에는 이야기가 있어]
떡볶이의 사랑은 말해 모해 입 아프지만 또 그냥 지나가면 섭섭해지는 게 떡볶이 이니라. 언제부터 떡볶이와 진지한 사랑에 빠지게 된 건지도 가물 해질 만큼 이제는 오래된 연인 같은 존재다. 시간을 거스르다 보면 그 희미한 종착역은 아마도 국민학교에 들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시절이지 않을까. 내가 다닌 초등학교 옆 문에는 문방구가 있었는데 온갖 진귀한 것들로 아이들을 집에도 못 가게 발을 꽁꽁 묶어두었다. 그리 넓지도 않은 문방구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100원짜리 동전을 만지작 거리며 뽑기를 할지 불량식품을 하나 사 먹을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 문방구 입구에서 퍼지는 진득한 떡볶이 향에 결국 손을 내밀고 만다. 작은 종이컵에 담긴 300원짜리 컵떡볶이는 집에 가는 내내 입이 심심하지 않게 해 주었다. 용돈이 하나도 없던 날에는 문방구 입구 옆에 서서 아주머니가 쉴 틈 없이 뒤적거리시는 떡볶이가 가득 들어있는 판이며 아이들 손에 오고 가는 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는 했다.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서있다 보면 아이들의 빈틈을 이용해 아주머니가 냉큼 이쑤시개로 떡을 콕 하나 찍어 주시고는 했다. 찰나의 행복함과 동시에 마음을 들킨 것 같은 민망한 기분이 든 나는 주신 떡볶이를 받아먹고는 잽싸게 자리를 피했다. 이 당시의 떡볶이는 나에게 컵 한 가득 담긴 행복과 떡볶이가 가진 온기만큼의 정이기도 했다.
지금은 떡볶이를 취향대로 골라먹을 수 있을 만큼 떡볶이의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그 와중에도 떡볶이에 취향을 논 할 수 있는 세상이 어색할 만큼 나는 떡볶이 입맛이 참 무던하다. 내 위장과 혀를 불태울 만큼 매운맛만 아니면 된다. 쌀떡은 쫀득쫀득해서 맛있고, 밀떡은 양념이 잘 베어서 좋고, 불 위에서 보글보글 끓여먹는 즉석떡볶이는 그 분위기가 좋아서 좋고, 탱글탱글한 라면이나 쫄면이 들어간 라볶이와 쫄볶이도 그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다 맛있으니까. 떡볶이의 달달하고 매콤한 소스는 그 어떤 사이드 메뉴를 가져와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엄청난 무기이다.
헌데 위기가 찾아왔다. 내가 만드는 떡볶이는 영 맛이 없는 것이다. 떡볶이 사랑만 몇 년인데 이렇게나 못 만들 일인가 여간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요리조리 정보를 얻어가며 멸치 육수도 내보고, 어묵을 지나치게 많이 넣어보기도 하고, 고춧가루로 만드는 떡볶이가 맛있다는 말에 고춧가루만 써보고, 마지막 필살기로 마법의 가루의 힘도 빌려보고 했으나 늘 어딘가 많이 허전한 맛이 나는 떡볶이가 완성되어있었다. 먹는 내내 아쉬움을 내비치는 나와는 달리 남편 무민 군 (무민 캐릭터와 모습이 닮아서 내가 지어준 별명이다. 본인은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은 본인이 먹고 싶은 대로 해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호로록 잘도 먹어준다. 그 뒤에 놓치지 않고 날카로운 피드백을 날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라면은 꼭 넣어줘. 오늘은 양배추가 좀 많다. 고춧가루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맛있어. 맛있으니까 또 해줘!
그래, 먹고 행복하자고 만든 요리인데 정작 내 떡볶이의 장점을 내가 몰라 주다니. 내가 넣고 싶은 재료를 마음껏 넣어 먹을 수 있는 특장점을 상업용 맛에 가려져 알아보지 못했구나. 언제든 먹고 싶을 때마다 만들 수 있게 기본 떡볶이 재료를 사두면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뒷빽이 있는 것 마냥 든든했다. 비록 아직 내가 만족할 만큼의 맛을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우울할 때 밥 먹기 싫을 때 무적 카드처럼 꺼내 먹을 수 있는 치트키 이기도 했다.
기분이 영 안 좋을 땐 올리고당을 좀 더 넣어 보기도 하고, 속이 느끼할 때는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스푼 가득 떠서 넣기도 하고, 설 명절에 떡국 끓이고 남은 떡국 떡을 쓰기도 하고, 슬라이스 치즈, 냉동만두, 깻잎 같은 재료가 보이면 스페셜 떡볶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물론 라면은 절대 빠지면 안 된다. 무민 군이 아주 섭섭해하기 때문에.
묘하게 정이 들어가는 내가 만든 떡볶이에 이제는 마음을 내어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