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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보라 Oct 11. 2021

요리가 되지 못 한

내가 만든 요리에는 이야기가 있어

요리가 되지 못 한


 아빠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 병실에 누워 숨을 쉬고 있었던 것 같은데, 방금 전까지도 화환과 함께 아빠의 얼굴이 걸려있었는데, 텅 비어진 장례식장에 아빠의 사진마저 사라지고 나니 이제는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구나 라는 사실이 온몸으로 밀려들어왔다. 아빠가 이제 없구나. 정말 갔구나.   


 4일 만에 돌아온 집,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 데도 아주 많은 것이 바뀐 것 같은 집과 나 사이에 서먹함이 흘렀다. 요 근래엔 집보다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기는 했다. 보이지 않는 어색함을 깨고 침대에 누워 차근히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았다.

 벌써 2달이 좀 더 지난날이구나. 그날 도 나는 지금처럼 침대에 누워있었고, 아빠는 내 방문 앞에서 아주 어렵고 조심스럽게 같이 병원에 좀 가자고 말했다.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암이라고. 사태 파악을 하려고 아빠를 바라보았지만 지금 이 순간 당장 필요한 행동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묻는 게 아니었다. 침착하고 빠르게 나갈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면서도 그 어떤 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너무 감당하기 힘든 말이 더 튀어나올까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 누구보다도 혼란스러운 사람은 아빠 본인일 테니까. 병원에 거의 다와 갈 때쯤 근처 식당에서 갈비탕 한 그릇 먹고 들어 가자며 손님으로 가득한 식당으로 들어가는 아빠의 발걸음을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앞으로 마주할 시간을 조금만 더 미루고 싶었던 것 같다. 뜨겁게 끓여 나온 갈비탕 두 그릇을 받아 들고 서로 말없이 먹는 시늉을 하다가 두려움을 깨고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였다.

“아마 초기일 거야. 수술하고 치료 잘 받으면 괜찮아질 거야.”

“응. 아빠도 그렇게 생각해.”

그 뒤에 몇 마디를 더 나눴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아마 아빠의 걱정을 좀 덜어주고 싶어서 너스레 같은 말을 늘여 놓았던 것 같기도 하다. 결과는 나의 예상을 정확하게 빗나가고 말았지만. 그 이후로 아빠는 병원을 4차례를 옮겼고 집을 나선 이후로 딱 한 번 할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러 온 뒤로는 누구보다 빠르게 이 세상과 멀어지는 시간을 보냈다. 2달 반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슬픔이 파고드는 와중에도 일상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눈물에 잠겨 있을 시간이란 건 없었다. 굳건히 자리를 지켜내야 했고, 많은 이들의 애도의 시간을 어른스럽게 보듬어드려야 했다. 그리고 일상은 쉼표 없이 돌아가야 했다. 어떤 날은 아빠를 떠올리지 않는 날도 있었고, 갑작스럽게 찾아와 푹 찌르듯이 눈물이 터지는 날도 있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주방에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갈치. 순간 냉동실 칸에 넣어둔 갈치 토막이 떠올랐다. 아빠가 항암치료 후 주말에 집에 들른다는 연락을 받고 미리 시장에서 장을 봐 두었던 것이다. 내 손만큼 이나 도톰해 보이는 갈치가 비싼 가격이지만 조림이든 구이이든 맛있을 것 같았다. 그 주 주말이면 맛있는 요리가 되어 밥상에 오를 줄만 알았던 갈치는 검은 봉지 안에 쌓여 아직 땡땡 얼어있었다. 요리가 한 창 어색하고 어설픈 때에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해 가며 고른 흔적이기도 했다. 차마 꺼낼 수 없어 그냥 그 자리에 두었다. 아빠에게 못 해 드린 것들만 떠오르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게 마음을 괴롭고 더 아프게 했다. 좀 더 일찍 요리를 해 드렸다면, 좀 더 살가운 딸이었다면 덜 후회가 되었을까?


 시간을 돌려 아빠가 아프기 전으로 돌아간다 해서 나의 행동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사랑은 하지만 서먹하고 각자의 인생을 사느라 바쁘고 마음은 가득하지만 낯간지러워 굳이 말하지 않는 사이었다. 숨이 멎어가는 그날까지도 우리는 서로에게 별다른 말 없이 그냥 옆을 지키는 그런 사이었다. 분명히 나 혼자만 아쉬운 게 아니라 아빠도 같이 아쉬워했을 거라 여겨본다.


 그 이후로 나는 주방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갈치의 행방은 누구에게 먹혔는지 버려졌는지 요리가 되었는지 쓰레기고 전락했는지 모른다. 그런 건 없었던 일처럼 묻어두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싶다는 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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