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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Jan 09. 2023

가끔은 캐나다가 선진국 같다

인구절벽 뉴스를 보며

캐나다의 느리고 비효율적인 행정 서비스(왜 비자를 전자가 아닌 종이 우편으로 보내주는가!), 혹한을 이기지 못하는 잦은 정전과 휴교, 예산 부족을 학부모의 기부로 충당하는 공립학교, 무상 의료지만 아파도 웬만하면 집에서 견디는 게 나은 의료 서비스, 넓은 땅만 믿고 대충 하는 분리수거와 재활용 문화... 등을 겪다 보면 여기가 과연 선진국인가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늘 비판적인 나도 '아 캐나다 선진국 맞구나' 수긍할 때가 있다. 시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 센터와 공공 도서관(Community Centre and Public Library)을 이용할 때 그렇다. 정말 너무 좋아서 샘이 난다.  



커뮤니티 센터가 부러운 이유


첫째, 많다. 접근성이 뛰어나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 1개, 차로 10분 거리에 2개, 20분 거리로 넓히면 5개로 늘어나고 30분 거리로 넓히면 10개 가까이 된다. 어디에 살든 없어서 못 간다는 말은 핑계가 될 것이다.


둘째, 프로그램의 종류가 다양하고 가성비가 훌륭하다.

생활체육, 미술, 컴퓨터, 언어 등 프로그램이 매우 다양하다. (* 음악 쪽이 다소 빈약해 보이긴 함) 그리고 저렴하다. 나도 아이들과 스케이트, 수영, 체스, 요리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뽕을 뽑고 실컷 이용하고 있다. 특히 감탄하는 것은 생활체육 시설이다. 아이스링크, 파도타기와 미끄럼틀을 갖춘 레저 수영장 등 대형 체육시설이 곳곳에 있다. 한국에서는 비싸거나 복잡하거나 멀어서 자주 가지 못했는데 이곳에서는 일상적으로 이용 가능하다. 수영만 예로 든다면, 레벨1부터 레벨9까지, 인명구조 프로그램부터 치료 목적의 수영까지 수준과 종류도 다양하다. 물론 캐나다에도 사교육 시장이 있고, 그런 수업은 한국보다 더 비싸지만 커뮤니티 센터에서 가성비 좋은 수업을 선택할 수 있으니 사교육의 필요성을 별로 못느끼고 산다.


셋째, 휴일이나 방학 때 아이들을 돌봐준다. 

아이들을 위한 하루 또는 주간 단위의 캠프를 많이 운영한다. 공립학교의 PA Day(Professional Activity day for school staff,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 Day Camp나 방학 기간 중 Summer Camp, Winter Camp 등 종일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운영된다. 여기 등록하면 아침부터 오후까지 체스, 댄스, 배드민턴 등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하면서 의미 있는 방학을 보낼 수 있다. After School을 원하지 않는 부모를 위해 한국의 육아 도우미나 학원이 수행하는 기능을 시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한국 학교도 돌봄교실이 있었지만 너무 지루해서 아이들이 가기 싫어했고 그래서 방학 때마다 시터이모님과 지방의 부모님께 손을 벌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었다. 우리나라도 이런 곳에 세금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세계 최저 출산율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단순히 애 낳는다고 돈만 얹어주는 제도로는 바뀌는 게 없을 것이다. 거기다 부모의 노동시간이 더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가 역행하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맞벌이 부부의 직접 보육 시간을 보장하고, 그게 여의치 않을 때도 사교육보다는 공적 지원에 기댈 곳이 생긴다면 출산률도 아주 조금은 올라가지 않을까.

생활 체육 시설들



공공도서관에 많은 세 가지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접근 가능한 도서관은 총 3개. 나는 광역 토론토의 끼인 위치에 사는 지리적 이점으로 3개 시의 도서관 멤버십에 등록했다. 상호대차시스템이 원활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수십 개의 도서관을 이용하는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아직도 회원카드를 플라스틱 카드로 주는 게 역시 캐나다스럽긴 하지만...


회원카드들


도서관들은 자료 대여와 학습공간 제공이라는 도서관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다. 토론토 공공 도서관 시스템은 규모 면에서도 세계 최대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토론토 도서관에는 세 가지가 많다.


첫째,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

외국어, 북클럽, 스팀과학 같은 다양한 수업을 정기적으로,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내 두 아이들이 지금 2시간짜리 파이썬 코딩 수업에 들어가 있는 덕분에 나도 편하게 이 글을 쓸 수 있다.


둘째, 이민자(New Comer) 지원 프로그램

캐나다에 새롭게 온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다. 뉴커머 대상 영어 수업, 일자리 찾기, 세금이나 보험 문제 같은 다양한 고충 지원 활동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셋째, 외국어책

내가 도서관에 자주 가는 이유는 한국어 책을 빌리기 위해서다. 토론토 인구의 반 이상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대부분 'World Language'라는 섹션을 두고 있다. 우리 동네에는 한국계 인구가 많아 한국책 컬렉션이 꽤 알차다. 덕분에 이곳에서 한국에서도 안읽던 한국소설의 맛에 빠져 지내고 있다.


캐나다의 도서관은 이 나라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용과 포용의 정신이 실현되는 장소이다. 단순히 책이 많은 곳이 아니라, 어린이나 노인, 이민자, 장애인 같은 소수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며 이들이 소프트 랜딩하면서 캐나다를 발전시키는 선순환의 허브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국 이민성 설치에 대한 뉴스를 봤다. 지금 이민자의 나라에 살면서도 막상 한국에도 이민자가 늘어난다고 생각하면 살짝 겁이 난다. 내가 생각하는 이민자에 대한 선입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도 인구절벽에 치달은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려면 질서 있는 이민정책 마련은 피할 수 없는 과제 같다. 우리의 이민정책이 반드시 성공적하길 바란다. 국경 관리나 이민자 유치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그 이후의 사회 통합이 성공적이었으면 좋겠다. 결국 외국인이 살고 싶은 나라가 원주민도 살고 싶은 나라니까.


캐나다에서 소설 읽기에 취미가 생긴 덕분에 한국에 가서도 동네 도서관에 자주 가보려고 한다. 집에서 거리가 꽤 되지만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설들은 최대한 누리고 싶다.


North York Central Library의 한국책 코너
Toronto Reference Library의 이민자 정착 지원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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