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늙어가는 것을 방치했다. 피부는 점점 늘어지고 비늘처럼 일어났다. 머리카락 절반이상이 희게 덮어갔다. 눈꺼풀은 아래로 처지고 볼살도 처져서 심술보처럼 보였다. 그래도 내버려 뒀다. 마사지는 고사하고 흔한 마스크팩도 하지 않았다. 게으른 탓도 있고, 원래 미용에 관심이 없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늙어가는 중이다. 키보드 자판기 위에 올려진 검지 손가락 손톱이 남편의 염색약 때문에 까맣게 물들어 있다.
조금은 섬뜩하고 망가진 모습에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느낄 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다. 바쁜 출근 시간에는 고무장갑을 끼지 않은 채 설거지를 하고, 퇴근 후에는 빨랫비누로 걸레를 빨아서 바닥을 닦는다.
주부의 생활이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작은 습관을 지키는 분들도 많이 봤다. 하지만 대부분 귀찮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명절을 지내러 간 시댁은 첩첩산중이다. 문 열고 나오면 산이고 하루에 버스도 두 번 지나간다. 그 마저도 이번 설에는 폭설로 운행금지! 그러니 그곳에 가면 그나마 게을리 하던 미용 루틴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추위에 따뜻한 곳을 파고들기에 게을러진다. 종교적인 특성상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지만 집안에 훈김이 나야 한다며 여러 가지 음식을 하라는 어머니의 지시대로 우리는 부침개며 갈비등 지지고 볶고 해 나갔다. 며느리가 다섯 명인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준비조와 부침조 마무리조등으로 나눠서 눈 깜짝할 새에 일을 끝낸다. 부침개를 부치면서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일은 당연하다. 간혹 시어머니는 맥주를 꺼내주는 센스를 발휘하실 때도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엉덩이를 철퍼덕 붙이고 앉아 지글거리를 부침개를 뒤집고 있는데 눈썰미 좋은 큰 형님이 둘째 형님의 얼굴을 보며 한마디 하신다.
"아무리 봐도 동서 얼굴에 뭐 한 거 같은데 얼굴이 팽팽하고 피부가 빛이 나는 게 뭐 했지?"
일제히 둘째 형님의 얼굴을 동시에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볼도 빵빵하고, 이마도 탱글탱글했다. 작년 추석 때 봤을 때만 해도 피하지방이 얇은 형님의 피부는 세월을 직격으로 맞았었는데 이제 보니 화장품 광고모델 수준이었다. 우리는 빨리 말하라고 재촉했다. 음흉함이 전혀 없는 둘째 형님은 부끄러운 듯 웃으시며 들릴 듯 말 듯 "보톡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피부관리 비법은 정말 놀라웠다.
둘째 형님은 처음부터 굉장히 세련되어 보였다. 영화배우 장미희를 언뜻 보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한 3초 정도 최명길을 닮은 듯했다. 옷 입는 센스도 좋아서 늘 우리의 부러움을 샀다. 나는 시댁을 갈 때는 무조건 운동복 차림인데 그 형님은 늘 갤러리에 미술품 관람하러 온 관객처럼 우아한 자태로 왔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양치만 겨우 하고 들어온 나와는 달리 클렌징이며 스킨케어를 열심히 했다. 며느리들끼리 잠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하면 머리맡에서 혼자 토닥토닥 탁탁탁 하면서 얼굴을 두드렸다. 그런 정성이 있어서일까? 늘 피부가 맑고 빛이 났다.
지난봄 큰일을 치른 후 얼굴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는지 가을 추석 때 본 얼굴은 많이 상해있었다. 그때를 생각하고 보니 확실히 달라졌다. 나를 포함한 다른 동서들은 그동안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 얼마가 들었는지 매일 밤 바르는 건 어떤 건지 집중 질문을 이어갔다.
알고 보니 유명한 브랜드 다*소에서 판매하는 5가지 화장품이었다. 보통 개당 5,000원이며 팩은 500원이었다. 그 모든 것을 강남의 유명한 성형외과 원장이 알려주는 정보였다. 동영상을 꼼꼼히 시청하고나니 확실히 믿음이 갔다. 품절일 것 같지만 당장 가서 구매해야겠다.
생각해 보니 글쓰기도 그렇고 나 자신을 가꾸는 일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주위에 자극과 함께 변화가 이어가는 게 아닐까 싶다. 나만의 방식으로 사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내가 좀 더 내 만족감을 위해서 누군가의 경험을 빌어 나도 그 모습으로 성공하고 변화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엄마의 유산>을 쓴 김주원 작가님의 북토크에 참석한 후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그래 매일은 못 써도 매주 한 편이라도 발행해 보자' 나와의 약속인 것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녁밥을 안치고 잠깐의 시간에 노트북을 들여다 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 보는 일. 분주히 내 시간을 쪼개고 사용하는 부지런함. 시간을 내어 내 얼굴을 가꾸고 글을 짓는 일. 그 일이 내가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엄마의유산
#부지런함
#글을짓는일
#피부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