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격려도 아낌없이 듬뿍
그런 날이 있다.
뭘 해도 잘되지 않고 우울한 기분이 엄습하는 날. 알람소리를 듣지 못해 새벽 기도 멤버가 혼자 벌벌 떨어야 했던 날. -10도의 날씨에 헉헉대며 뛰어서 전철을 탔는데 빈자리에 앉은 기쁨도 잠시, 내 옆자리의 젊은 여성은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팔꿈치로 내 뱃살을 묵직이 짓누르는 날. 장례식장에 함께 간 지인들 틈에서 알 수 없는 대화로 가슴이 답답한 날. 소음으로 알아듣지 못한 대화에 개그 소재로 삼고는 깔깔대는 사람들. 소화가 되지 않았다. 계속 꺽꺽하고 신트림만 올라왔다. 하루종일 사무실에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업무에만 신경 쓰니 뒷목이 땅겨왔다. 퇴근 후 쓰레기통을 버리지 않고 가버리는 여직원까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내 가슴을 압박하는 것 같았다. 확 트인 개천이 있어서 좋아라 하는 출퇴근길을 걸을 때면 속이 뻥 뚫렸는데 오늘은 그 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제부터 시작된 것들이 답답하게 나를 짓눌러왔다. 신이 주는 모든 행운이나 자잘한 행복들이 나를 비켜가는 것 같다. 어찌 매사에 좋은 날만 있으랴. 하지만 유독 자존감이 떨어지고 웅크리게 되는 날이 며칠째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겠지만 뭐든 원인을 알고 치유하면 더 빠르게 회복되지 않을까. 주말에 브런치 글 발행한다는 나와의 약속도 애썼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내 문제는 무엇일까. 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단순함이 내게는 없는 것일까. 곱씹기만 한다고 풀 매듭이 찾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 싹둑 잘라내고 싶지만 현실은 또 호락하지 않았다. 글 속에 뭔가 해답이 있을까 싶어 출퇴근길엔 늘 브런치를 헤매었다.
시어머니와 갈등,
이혼 후 겪는 아픔,
많은 이들이 이곳에 자신들의 아픔과 고난을 이야기하며 글로 풀어나가는 것이 보였다. 글 쓰는 이들은 대부분 글로 치유하면서 지난 시간을 되새겼다. 그 시간을 돌아보며 삶의 애환을 풀어놓았다. 글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글로 위로받는 시간들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 나도 한 때 괴로운 마음을 이곳에서 털어놓고 가벼워지곤 했지. 몇 년 간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면서 나 또한 글로 그 마음을 치유하지 않았던가. 저녁밥을 먹고 난 후 깨끗이 치운 식탁 위에서 일기를 쓰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의 위로를 받은 내가 아니던가. 하이에나처럼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며 이런 상황에서 작가님은 이렇게 마음먹고 결정하고 행동하셨구나. 수많은 글들 중 내게 콕 박히는 글이 들어왔다.
은파랑 작가님의 자기 수용의 중요성이라는 글이 내게 들어왔다.
자기 수용은 심리적 행복에 이르는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자기 수용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를 이해할 때 자존감도 더 높아지고 삶의 만족도도 높아진다고 했다.
자기비판에서 벗어나 나를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나의 결함을 생각해 보자. 나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인 나. 그래서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일이 없다. 딸로,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살면서 내 욕심을 먼저 챙겨본 적이 있었나? 생각나지 않는다. 하다못해 점심 메뉴를 먹어도 나보다는 상대가 먼저 정하기를 바란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가족 중 누군가가 떠오르고, 좋은 곳에 여행을 하면 가족 중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물론 그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 순간에 나 자신을 위해 좋은 것과, 좋은 음식, 좋은 곳을 바라보고 먹고 누리는 행복감을 내가 가진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해 온 것은 상대의 배려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을 누리지 못한 것이다. 자기 수용은 없고 오로지 상대만을 위한답시고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하는. 그렇게 남 눈치만 보면서 살다 보니 타인에게 쉽게 휘둘렸던 것이다.
은파랑 작가님의 말처럼
"지금 이 생각이 나에게 행복하게 해 주는가"라고 자문하고, 비판에서 벗어나 긍정적 사고로 전환.
"나는 이 부분에서 부족할 수 있지만 괜찮아"라는 스스로의 대화는 자기 수용을 촉진한다.
타인을 위로하듯 나 자신에게 위로해 주는 것.
되바라진 행동이 아니라 결국은 나를 살리고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 나를 존중해 주고, 나를 사랑하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습관을 길들이자. 잘못한 것을 비판만 하기보다 잘한 건 칭찬하고
잘못해도 괜찮다고 다독여 줄 수 있는 생각의 전환과 훈련이 필요한 때이다.
행복을 찾는 자기 수용의 훈련, 그 여정을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