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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되살리기

운동과 글쓰기로

by 랑지

5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몸은 더욱 굳어지고 살은 급속도로 찌기 시작했다. 몸이 둔해지니 정신과 영혼까지 둔해져 갔고, 일상은 더욱더 내 감성을 만조의 물때처럼 침식해 갔다. 슬픈 장면을 봐도 눈물이 나지 않았고, 기쁜 소식을 들어도 데면데면 넘겨버렸다. '이제는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져 가는구나' 라며 당연시 여겼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남편과의 관계였다. 부부 대화에도 나는 점점 단답형이 되어갔고, 남편의 구둣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설레고 사랑했던 마음은 아침안개 걷히듯 사라져 버렸다. 중년의 위기라기보다 이건 분명 내 신체적인 문제였다. 운동 부족으로 오는 둔한 신체 그로 인해 발생되는 무감각해지는 감성. 내 몸은 점점 고립되는 느낌이 들었다. 해결해야 했다. 이렇게 나를 버리는 카드로 쓸 수 없었다. 무기력했지만 나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움직이지 않던 지난 시간 동안 몸은 무거워지고 근육은 굳어가고 감각은 사라져 갔고, 그로 인해 말랑해야 할 내 정신도 딱딱해져버리고 말았다.

무조건 체력을 기르고 다이어트를 해야 했다.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하는 나는 밥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양을 줄이기로 했다. 10년 가까이 수영을 했는데 수영이 두통에 안 좋다고 하니 그것마저 포기했다.

무슨 운동을 할까. 점핑을 해봤다. 두통이 왔다. 의사도 권유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내가 할 수 있는 조건을 생각해 본 결과 걷기가 좋았다. 트레킹도 하루 2만보를 할 만큼 좋아하고, 산행보다는 둘레길을 걷는 걸 선호했다. 다행히 회사 근처 지하보도는 지하철 몇 정거장이 연결되어 있어 걷기가 충분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퇴근 길은 내게 걷기 운동하는 시간이다. 지하철역 두 정거장 전에 하차한 후 2.4km를 걷는다.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걷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하루 6km 걷는 셈이다. 3주째 실천하고 있는데 몸무게라든가 외적이 변화는 전혀 없지만 걷는 속도나 계단을 올라가는 숨가뿜이 사라졌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은 10층에 있는데, 걷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한 번도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가지 않았다. 걷기 이후부터 계단으로 올라가 봤다. 역시나 한 번에 끝까지 오르는 건 무리였다. 숨을 헉헉거리면서 5층 층계참에서 숨 고르기를 한참 해야 했다. 그다음 날은 조금 덜 헉헉거렸던가. 그 다다음날은 쉬지 않고 올라갔나 보다. 그렇게 서서히 몸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굳어가던 몸도 조금씩 풀어지고 근육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물론 격렬한 운동은 아니지만 운동이라면 숨쉬기만 하던 내가 하루에 15,000보를 목표로 변화를 주고 있다. 몸은 서서히 내가 움직은 만큼 달라지고 반응하겠지.


내 몸은 서서히 변해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움이 무감각을 이겼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 때까지 오래 걸리겠지만 해보자. 꾸준히.


달에게서 배운다


달에게서 배운다

자신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그 속도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낮이나 밤이나

자전하고 공전하며

단 하루도 멈춤 없이

궁극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에서 다른 존재들을 비춘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완성을 확인하기 위해

부수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완성된 상태에 정지해 있는 일보다

더 어두운 건 없다는 것을


-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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