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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전증후군 없는집

by 랑지

이제 30년이 지났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 했것만 아직도 명절이 다가오면 몸의 컨디션부터 나빠지는 건 내 온몸에 시댁에 대한 거부 유전자가 박혀버린 것 같다. 명절전이면 유독 몸이 아프다. 사실 명절뿐 아니라 시댁방문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닐까 싶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게 된 것도 최근이니까. 내가 너무 극도로 예민한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시댁은 내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봄이면 농사철이 시작되어 모내기며 각종 채소 파종을 도우러 가야 했고, 여름엔 풀 뽑기, 고추수확등 할 일은 무궁무진했다.



다른 시골집과 달리 시댁의 풍경은 아버님은 주로 바깥일(군청에 드나드는)을 하셨고, 어머니가 농사일을 전적으로 도맡아 하셨다. 남편은 그런 어머니를 도와야 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했고 나 또한 그런 것에 큰 거부감 없이 해왔다. 먼 시골길을 늘 아이들과 함께 했고 살림에 별 관심 없는 어머니를 위해 쓸고 닦는 일이며 주방일까지 직장 다니는 며느리로서는 군말 없이 해왔다. 아무리 귀성길이 힘들어도 안 가면 안 되는 고향이었고, 도시 생활이 지치고 바빠도 농사일을 도우러 갔었다.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보며 대단하다고 했다. 그 대단하다는 의미는 요즘 보기 드문 효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있나요?라는 해석이기도 하다. 나는 남편이 없이도 시댁을 갔다. 농번기철이면 밥이라도 해드려야 한다고 해서 갔고, 남편은 회사일로 출장이나 다른 행사가 겹쳐 주말에 쉴 수 없을 때 아이들하고 다녀온 적도 있다. 그땐 자가용도 없어서 고속버스 타고 가다가 멀미를 해서 화장실에 딸 둘을 데리고 들어가서 게운 적도 있었다.(갑자기 서럽네) 며느리가 나 하나면 그런 것도 견디면서 했을 텐데 5명의 아들이면 며느리도 5명 일 텐데 살아보니 다른 며느리들은 꼭 그렇지 않은 것이다. 명절과 생신 때만 삐쭉 얼굴 내밀고 온갖 선물과 용돈으로 며느리 역할 끝이었다. 어라! 몸으로 때우니 몸종처럼 부려먹으려는 건가?



그러길 20년쯤 이제 나도 지쳐갔고 나만 호구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를 남편은 나 할 도리만 하면 되지 왜 다른 사람을 생각하냐고 하는데 그것마저 내게 가스라이팅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 이후 나는 내가 마치 부당한 며느리 대우를 받는 것으로 남편에게 어필했고 남편은 억울해하면서 차츰 내게 시댁 방문에 대한 강요를 줄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가고 싶을 때 말해 그럼 그때 함께 가. 남편의 계산 착오. 난 시댁을 가고 싶지 않으니 먼저 가자고 하는 일은 없었다. 기다리다 지쳐 먼저 시골을 가는 날을 가족들과 정하고도 간혹 일정을 자기 맘대로 앞당겨 재촉하기도 해서 딸들과 다툼도 있곤 했다. 주말 새벽에 출발하자고 해놓고 갑자기 금요일 밤에 가자고 하면 친구들과 약속한 건 어쩌라고. 이런 식이었다. 남편은 그럴 때 하는 말. 다 가지 마였다.


엊그제 뉴스 기사 중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중학생 자녀에게 원래 가려고 했던 날짜보다 일정을 당겨 가자고 해서 말다툼한 아빠가 아들에게 손찌검을 한 기사였다. 명절이 다가오니 이슈가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아빠의 잘못이다, 그래도 대든 아들의 잘못이다 분분했다. 뉴스에 나온 그 아빠도 '다 가지 마'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다 가지 마'라는 말은 국롤인가?



올해는 나라에서 정해준 특별공휴일이 껴서 얼씨구 하고 좋아했것만 주말부터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

이번엔 꽤나 큰 놈이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진통제를 연거푸 3번째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어째 1월은 잠잠하더라니. 특별공휴일은 공치고 날려버렸다. 이틀 동안 꼼짝없이 누워서 이마 위에 얼음팩을 올려가며 올라오는 구역질을 감당해야 했다. 남편은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헬스며 약속을 다녀왔다.

'시골 가려니 또 아픈 거군', '제사도 없지', '차례도 안 지내지', '이젠 큰집식구들이 성묘도 안 오잖아' 뭐가 힘들다고 그럴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그럼에도 명절 전에 왜 유독 내 몸이 이런 반응을 하는 걸까? 설날은 겨울이니 감기증상 때문이라고 치더라도 추석은 계절탓하기엔 너무 여름 끝 아닌가. 잠깐! 그런데 내가 친정집을 간다고 하면 아팠던 적이 있던가? 결국 시댁은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이 뇌 깊숙이 박혀있어서일까. 잠깐 다니러 가는 곳. 며칠 가서 죽을 둥 살 둥 일하고 오면 맘 편한, 의무감으로 해치 우는 곳. 시댁에 가서 일을 하지 않고 온 적이 없다. 늘 농사일 아니면 집안일이 방문 목적이었다. 부모님이 바쁘기도 했지만 바쁘지 않은 겨울에도 근처를 여행한다거나 한 끼라도 외식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 내 몸이 반항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냥 가야 하는 곳. 금, 토, 일 3일 힘들게 일해주고 오면 끝! 그런 의무감이 내 잠재의식 속에 깊이 배어 있는 것도 증후군이 온 이유 중 하나 아닐까 싶다.


역시 난 부정적인 사람인가? 좋은 것을 쓰려니 무척 어렵다.


명절이 내일모레인데 다른 때와 달리 아직도 내 집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해마다 명절이 오면 근무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들어온 선물을 싸서 내려가기 바빴다. 올해는 남편이 먼저 월요일 저녁에 고향을 내려간다고 했다. 이게 웬일! 우린 다른 말 못 하게 재빨리 달력에 표시를 해뒀다. 그러나 역시 월요일 저녁에 내려가자던 남편은 벌써부터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건 어떠냐고 부릉부릉 시전을 하는 중이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러나 저러나 시댁에 콧노래까지 아니더라도 아프지 않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독 높은 산이 많은 남편의 고향, 눈 덮인 산그리메를 감탄하며 그 기분으로 2박 3일을 지탱했으면 좋겠다. 시댁 문지방에 올라서자마자 앞치마 두르고 주방 앞으로 행군한다. 몇 날 며칠 칼자루와 고무장갑을 벗을 새 없이 지내다와도 다시 가고픈 마음이 들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머지 않아 내 자녀들도 명절이면 내 집을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나는 내 자녀들에게 찾아오고 싶은 고향집이 되게 만들어야겠다. 농사는 짓지 않겠지만, 농사일에 지치지 않게 하고, 도시에서 지친 스트레스를 자연에서 치유하게 해주는 쉼이 있는 고향집.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조급함이 없이 모든것을 비우고 갈 수 있는 넉넉한 쉼터를 말이다. 유유자적한 며칠을 보내고 전쟁터 같은 도시로 가서 또 견디며 살아낼 수 있는 힘을 받쳐줄 수 있는 고향집. 그런 곳을 만들어 놓는다면 명절전증후군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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