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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Dec 23. 2020

빛나는 악역

(질투는 그녀의 힘.)

부장님이 이뻐하고 특별하게 여기는 그녀의 악행이 어떤 건지 아세요?

그렇게 첫 운을 떼고 그녀의 행각을 낱낱이 고자질하고 싶었지만 번들거리는 부장의 얼굴을 본 순간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점심도 거른 채 고민을 했던 탓인지 살짝 어지러움증을 느꼈지만 조용히 흰 봉투를 내밀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사를 하겠습니다."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던 말들은 다 사라지고 개미 똥구멍만 한 작은 목소리가 나왔다.

예의 차원에서 하는 소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며 몇 번 거절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부장은 약속이 있다는 듯이 손목시계를 쳐다보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

알았으니 그만 나가라는 뜻이리라.


사표는 받아들여졌다.

11층에서 5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처럼 느껴졌다.

내가 왜 이렇게 도망쳐야 할까? 그동안 내가 쌓아온 나의 경력은 다 무너지는 것인가.

자리에 돌아와 앉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지만 입술에 피멍이 들 정도로 힘껏 깨물었다.

내가 졌다고 인정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작고 다부진 체구에 졌고 날쌔고 유능한 능력에 위축되었다.

내 옆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찬바람 몰아치듯 쌩하며 지나쳤다.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 나를 모함했고 시간이 갈수록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그녀와 처음 만난 건 10년 전이었다.

내가 속해 있는 사업소로 왔다. 경력직으로 채용되어 왔었다.

기존에 근무했던 경력이 유리한 조건으로 팀 내 비어있던 팀장 자리로 왔다.

그녀가 우리 부서의 팀장중 한 명으로 와서 보여준 업무능력은 정말 남 달랐다.

민첩한 행동, 센스 백 단, 무엇보다 깔끔한 업무처리 능력과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부장님 책상까지 닦아놓았다.

탕비실에 있는 냉장고 청소까지 말끔히 해놓은 날은 혀를 내두르며 우리는 그냥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언변이 좋아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유쾌하게 했고 음주가무의 능력도 뛰어나서 회식자리에서 늘 부장의 기쁨조가 되었다. 전쟁터 같은 회식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서 직원들을 챙겼고, 더 놀라운 건 다음날 출근도 가장 먼저 했다.

그녀의 간은 강철로 만들어서 티타늄으로 잘 씌워져 있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빈틈이 없었다.

영업능력도 뛰어나 늘 상위권의 실적으로 회사에 큰 기여를 했고 성과급은 내 3배를 가져갔다.

임원들은 당연히 그녀를 좋아했다.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딱 하나 아킬레스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다.

언제 잘릴지 모를 계약직, 가장으로서의 다하지 못하는 역할, 경제적인 무능함이 자신의 완벽함에 큰 흠집이었다. 그녀의 완벽한 기준에서  남편은 그냥 자기 집의 한 식구였을 뿐.

그녀의 핸디캡을 감춰줄  화풀이 대상이 된 사람들은 이랬다. 남편이 돈 잘 벌어다 주는데 회사의 업무능력이 자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으로 타깃이 되어 갔다.

남편과 분기별로 골프여행을 가곤 했던 나이 많은 팀장의 업무실수를 점심시간이나 술자리에서 가차 없이 난도질을 해댔다.

그 팀장은 결국 암으로 퇴사를 하게 될 때까지 늘 험담의 주인공이 되곤 했다.

그 팀장이 그만 두자 화살은 내게 와서 박혔다.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내가 숨 쉬는 것도 싫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하는 것도 싫다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모든 말들이 나를 빗대어 비웃듯 퍼부어 댔고 나는 그나마 약했던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녀의 기준에서 나는 잘못했다.

남편이 대기업을 다녔고 모든 경제권이 내게 있다는 것이 그녀의 입장에서 질투의 조건에 해당됐다.

잘못한 것도 없는 나는 그녀 앞에서 위축되어갔고 어깨는 펴지지 않았다.

이런 자책으로 날마다 조금씩 자신감을 잃었고 그녀는 상급자의 신임을 더 확고히 다져서 존재감은 더 커졌다.

그녀와 회사 앞에서 나는 외로운 섬이 되어 가고 있었다.

소심한 성격이라 남 앞에서 내 자랑을 늘어놓지도 못하는데 내가 가진 게 그녀에겐 부러움이었나 보다.

몇 번 자리를 마련해 잘 지내보자고 했지만 이미 서먹해진 관계에서 돌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의 시간 동안 내 주위에는 사람이 없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껴가며 살아볼까도 했지만 나는 거기서 주저 고 싶지 않았다.

버티고 견뎠다.

회사에서 꼭 일등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라는 자기 위안을 하면서 나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녀의 무리와 단절은 외로웠지만 나는 조금씩 나를 성장시켜 나가고 있었다.

혼자만의 점심시간은 책과 함께 했고 퇴근 후에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에게 털어놔도 해결되지 않던 내 마음은 책을 통해 변해 갔다.

책 속에서 나의 단점도 보았고 책 속에서 그녀에게 하고픈 말도 찾았다. 중요한 건 책을 통해 상처 받은 나를 치유하게 되었다.

설렜다. 외로운 섬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내 마음속에 작은 섬들로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삶의 돌파구를 찾은 기쁨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써보고 싶었던 희곡을 썼다.

신춘문예에 참가했다.

물론 낙선이었지만 나는 즐거웠다.

몇 달 동안 내 속에 품은 자식을 잘 키워낸 경험이 적지 않은 희열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그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를 작고 초라하게 만들려고 했던 당돌한 그녀, 악연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로 인해 나는 나를 재발견하게 된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것을 부러워 하고 심지어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그녀의 완벽함에 한가지 부족했던 무언가가 나에게 있었다면 그것이 그녀에게 부러움을 넘어서 질투로 까지  변질 되었건 것이리라.

나 또한 그녀의 사회생활의 민첩함과 눈치가 부러웠다. 하나를 말하면 열가지를 준비하는 눈치 백단의 행동 말이다. 두 번 태어난다고 해도 그러지 못할 그녀만의 능력이다. 부럽다.

부러움에 눈이 멀어 질투까지 할까? 질투가 지나쳐 따돌림까지 하는건 더더욱 할 짓이 아니다.

왕따는 사춘기때나 오십이 되어서나 겪을 일은 결코 아니었다.


나를 작고 초라하게 만들려고 했던 그녀에게 어쩌면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글을 통해 나는 브런치작가로 승인을 받았다.

나를 초라하고 외롭게 만들었던 그녀로 인해 내 안의 나를 재발견 했으니 그녀의 행동이 꼭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그녀의 악역은 멋진 내 삶의 무대로 당당히 나가게 해줬던 빛나는 악역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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