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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Jan 03. 2021

변함없이 꾸준히 해보는 것.

거창하지 않게.

작년, 그러니까 2020년에는 다를 줄 알았다. 새해 첫날 내게는 열 줄 가까이 되는 목표가 있었고, 그 걸 모두 해내겠다는 의지도 활활 탔었다. 

회사에서 난데없는 따돌림을 받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때쯤 겨우 헤어 나온 나는 책으로 위안을 받고 글로 내 속의 우울함을 떨쳤다. 

우울함을 극복하니 아버지가 황망 중에 생을 달리하시고 재작년 시아버지에 이어 친정아버지까지 이생을 떠나시는 큰일을 겪었다.

아버지와 해결되지 않는 감정이 있었던 나는 사죄의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이별을 해야 했기에 더욱 힘들었던 해였지만,  따로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던 나는 블로그에 일기장인지 푸념인지 알 수 없는 글들을 쏟아냈다.


새해 정했던 목표는 흐지부지 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번엔 내게 근원을 알 수 없는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몸이 아팠다. 주말마다 찾아온 두통은 내 생활을 힘들게 했고 무슨 일을 할 수 없게 내 주변을 항상 도사리고 있는 폭탄 같았다.

통증클리닉을 수시로 들락 거렸고 병원에서는 늘 이상이 없다면서도 툭하면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여러 가지 좋다는 성분이 다 들어간 약도 별 소용이 없었다. 

같이 근무하던 부장님은 내게 삼재가 들어서 그렇다며 부적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새로 취업한 회사는 하필 해외여행업무를 하게 된 곳인데 코로나로 인해 나는 두 손을 놓고 있었다.

하는 것마다, 하는 일마다 삐걱거렸고 내 몸은 거기에 맞춰 망가져갔다.


그래도 글은 썼다. 

저녁을 먹고 치운 식탁, 엘이디 조명 아래  눈을 돌리면 김치 국물이 스며든 싱크대 옆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내 글을 누가 보건, 읽어주지 않던 썼다. 

대단한 글쓰기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썼다. 

주제를 정해놓고 글을 쓸 줄도 몰랐고 있어 보이는 고급진 외국어가 들어간 글도 없지만 그저 하루에 느꼈던 단상들이나 어떤 상황을 놓고 썼다. 글이 조금씩 쌓여갔고 읽은 책들이 내 주위를 에웠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100년 전 사상과 혁명을 위해 온 몸을 불사르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읽어갔다. 

그럼에도 '나'라는 사람의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 쉬웠고, 감정들은 때론 너울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두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힘든 감정들을 나는 책과 글쓰기로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좋은 마음이 드러날 때야 다행이지만 싫은 마음이 드러날 때는 난감하기 때문에 되도록 마음 훈련을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단련하려고 했다. 

대부분은 넉넉한 마음을 갖고 대하지만 가끔은 내 민낯을 그대로 드러나는 일도 있었다.

그러기에 더더욱 책으로 도피했다가 글로 힘든 마음을 떨쳐내곤 했다.


많은 분들이 작년 한 해 어려웠다고 얘기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하지만 꼭 나빴던 것만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한 번의 낙방 끝에 브런치 작가로 승인을 받았다. 브런치 작가가 돈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내 절망스러운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 내려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고 기억한다.


다시 작년과 같이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열 줄짜리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사실은 아직 세우지 못한 것이다. 

거창하게 열 줄이 아니라 한 줄이라도 내가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것으로 해보려고 한다. 

몸도 어지간히 나아가니 작년과는 다른 올해가 될 것이다.

책과 함께 글쓰기는 꾸준히 해 나갈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책상 옆에 박스도 뜯지 않은 책이 쌓였다. 

책꽂이에 읽다 만 책들도 꽤 많다.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은 더 많으니 잠을 자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작년처럼 힘든 상황에도 나는 책과 글쓰기를 내려놓지 않은 것처럼 올해도 그럴 것이다.

꾸준하게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다면 내 삶은 스스로 빛을 발할 것이니까.

내 이야기가 가치가 있는 그날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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