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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Jan 08. 2021

운동의 대체 조건

빡칠 땐 수영이 최고.

수영을 꽤 오랜 기간 했었다. 몇 개월 버틸까 싶었는데 10년 가까이 해왔다.

중독이었다. 밥은 굶어도 수영은 매일 했었다.

사고로 인해 척추관 협착증 관 삽입을 했던 내게 의사 선생님이 권유하신 운동이었다.


회사 지하에 수영장이 있어서 바로 다음날 접수를 했다

온몸의 이두박근을 뽐내는 강사들이 있었던 터라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카드를 긁었다.

바닷가에서 개헤엄을 치던 실력은 죽지 않았는지 둔한 내 몸은 물에 빠르게 적응했다.

회가 거듭될수록 수영 실력은 늘어갔다.

레인 위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강사의 손바닥만 한 수영복을 쳐다보긴  민망했지만, 나를 포함한 강습생들은 젖은 눈알을 씻어가며 강습에 열중했다.

오리발을 착용하고 수영을 하는 날은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날이기에 극한 훈련을 하는 선수처럼 25미터 레인을 돌고래처럼 헤엄쳐갔다.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삼각 수영복 강사는 가끔 포즈가 좋다며 사기 돋는 칭찬을 해주면 나는 팔다리를 오버해 가며 물개처럼 날렵하게 물살을 갈랐다.

그런 날은 탈의실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올 때쯤이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렇게 시작한 수영은 내게 삶의 활력을 주었다. 

운동과 함께 식단도 조금씩 줄여갔고 밀가루와 맥주를 끊었더니 다이어트 효과까지 그야말로 일타쌍피 었다.

나는 수영 후 후들거리는 다리와 함께 나른해지는 내 몸을 느끼는 게 좋았다.

공복이 가져다주는 깨끗하고 가벼운 느낌은 말할 수 없는 쾌감을 주었고, 무엇보다 수영이 끝난 후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그 길에서 느끼는 마음의 후련함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하루를 완벽히 이루워낸 기분이었다.

하루 동안 쌓인 몸의 뭍은 딱딱한 세상의 먼지들과 알게 모르게 쌓였던 마음의 스트레스가 수영장 물에 모두 희석되어 날아간 기분이었다. 그렇게 운동으로 나는 풀었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애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남편이 내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도. 

수영장이 나의 은신처였고 나의 고해성사 장소였고 내 삶의 활력을 주는 곳이었다.

물속에 머리를 넣고 숨이 머리 끝까지 차오르면 파하~~ 하며 숨을 내쉬어주면 내 머릿속에 있던 

복잡한 그 무엇들이 다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물에 둥둥 떠서 빠르게 전진하며 물살을 가로지르는 그 기분은 해 본 자 만이 알 것.


물 좋다는 수영장을 몇 차례 옮긴 후 나는 초급에서 상급으로 레인의 위치까지 바꿔가며 수영에 빠졌다.

주말에도 툭하면 목욕 바구니를 들고 크고 넓은 수영장을 찾아다니며 물살을 가르고 다녔다.

그런 나는 허리 통증도 없어져서 몸도 한결 나아졌고, 무엇보다 정신도 물처럼 맑아졌다. 


아니 맑았었었다. 

코로나로 여러 운동시설들이 집합 금지로 인해 운영이 제한되기 전까지.

나는 더 이상 몸도 마음도 정신까지도 맑아지지도 가벼워 지지도 않게 되었다.

운동으로 풀어야 할 나의 스트레스는 어디에도 풀 수 없었고, 차곡차곡 쌓여갔다.

오늘 같이 남편이 내게 상의 없이 시댁으로 돈을 보내는 날엔 더더욱 수영장을 가야 하는데

나는 화가 나는 마음을 풀 곳이 없다.


운동으로 해소되지 못한 이 들끓는 감정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몸에 근육이 빠져나가듯 마음 한편도 어쩐지 허무하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생성된다.

그렇다고 남편을 바꿀 수 없는 노릇. 

시댁을 못 본채 할 수 없는 일.

변화가 보장된 방법이 내게 제시되지도 않을 터.

바꿀 수 없다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그냥 무방비 상태로 화난 상태로 살아갈 수는 없다.


수영이 대체되지 못한 다면 나는 책으로 글로 대체해본다.

쌓아둔 여러 책중에 한 권을 뽑고 그 속에 나를 위로해줄 문장을 찾아내는 것.

문장을 가지고 사유하고 성찰해서 그것을 토대로 글을 쓰는 것.

그래야 내 마음 근육이 단련되지 않을까 




그림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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