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지 Nov 20. 2021

브런치야 꼭 조건을 걸어야겠니?

드문 드문 글을 올리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던 브런치에서 선물을 준다는 알림 화면이 떴다.

작심하고 매주 글을 발행하겠다고 브런치와 약속해놓고 알림이 오면 애써 회피했던 나는 

선물이라는 글자에 버튼을 잽싸게 눌렀다.

'발행'글이 없으니 글을 쓰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선물에 눈이 멀어 평소에는 굼뜬 내가 전광석화같이 버튼을 눌러대니

콧바람이 흥 하고 빠지는 웃음이 나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1년 동안 브런치 활동 결과에 따라 상을 주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


5년 차 작가

공감 에세이 작가

다작 작가

누적 100만 뷰 작가

구독자 상위 1% 작가

라이켓 상위 3% 작가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나는 '브런치가 그리 호락호락 할리가 있나' 싶어 

화면을 조용히 닫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의욕이 충만한 때가 있었다.

브런치 작가를 신청할 때만 해도 글만 쓰면 상처 받은 내 인생의 어느 귀퉁이가

말끔히 치유되고 부드러워질 줄 알았다.

내면에 깊이 박힌 가시 같은 일이 글로 풀어내어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고 번듯한 책까지 내리라는 꿈에 

게거품을 물며 작가에 도전했다.

실패 끝에 나에게도 공인된 글쓰기 플랫폼이 주어졌다.

하지만,

멍석을 깔아놓으니 몸(손가락)은 더 베베 꼬여졌다. 


블로그를 쓸 때는 일기처럼 내 마음을 툭툭 털어놓던 때 와는 달리

브런치는 왠지 구독자들과의 거리가 더 까마득하게 멀어져 보이기만 했다.

블로그를 쓸 때와 차별 없이 그저 끄적이기만 했던 게 문제였을까.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위축되어가고, 내 글은 쓰레기 같다는 생각마저 

든 시기가 오자 아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내 글을 누가 보겠어. 

내 글을 누가 공감하겠어.

내 글은 감동이 없잖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쩌면 핑계일 수 있다.

까마득하고 어두운 거리에 대한 불안함을 떨쳐내기 위한

공허하고 헛헛한 말들이란 것을.


사실 따지고 보면 브런치는 나에게 걸음마를 떼게 해 준 존재이다.

내 안에 누적되어 있던 무거운 것들을 풀어내고 가벼워지게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 풀어내어보려고 늘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언젠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취미가 글쓰기가 된 게 다행이냐고. 

그저 읽고 쓰는 것이니 당신이 싫어하는 돈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고."

남편은 자신의 고귀한 뜻을 매도한다고 한마디로 잘라 말했지만

나는 글쓰기가 꽤나 나한테 잘 맞는 것이라고

착각까지 했었다.



브런치가 나에게 대가를 바라고 길을 열어준 것이 아니기에 

사심 없이 글쓰기를 해 보는 것이다.

그러다 브런치와 내 글쓰기가 어느 접점에서 발화되어 빛이 나면 좋고

아니어도 나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다고 브런치에서 상을 주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콘텐츠 시대다.

남과 차별화되거나 독특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특별한 재능도 없고 남다른 글쓰기 능력도 없는 내가

유일한 취미인 글쓰기를 하는 건

흐트러지기 쉬운 내 마음과 일상을 글로 잘 조율해나가는 것이다.

조율한 악기가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이 

내 일상과 생각을 조율한 것들을 브런치에 한 글자 한 글자 아름답게 

쓰고 싶을 뿐이다.


그 이상이 되어서 선물을 주면 기꺼이 받을 마음은 항상 준비되어 있다.

작가의 이전글 공기놀이게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