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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Nov 22. 2021

커피맛이 뭣이 중헌디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과 2,000원 대결은?

북유럽명화가 그려진 커피잔에 담긴 블루마운틴


남향으로 낸 넓은 거실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주방창 너머로 보이는 야트막한 산에는 짙은 초록이

물들어 있는 게 보인다.

주인 솜씨를 보여주는 잔디는 단정히 깎여있고

집안 어디서에나 눈을 돌려도 마당이 한눈에 보인다.

빵 굽는 냄새가 온 집안을 달콤하고 고소하게 스며들 때쯤

생명수를 영접하듯 커피를 내린다.

책 한 권을 펴 들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커피의 향으로 영혼을 깨우고 한 모금의 생명수로

굳었던 근육이 느슨해지는 시간.

이런 시간을 가져보는 게 내 바람이다.


나는 직장생활을 쉬어본 적이 없다.

2019년도 3월.

20년 다니던 회사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 위해 20일 정도 쉬었는데 그 시간 동안 여유를 갖고 커피 한잔 해본 기억이 가물하다.

게다가 사는 곳은 아파트이기에 위에 펼쳐놓은 내 환상은

아직도 환상으로만 남아 있다.


사무실 옆 2,000원하는 커피

커피를 마시기 위해 출근을 한다.

지금보다 젊고 독박 육아를 하면서도,

이제 내 한 몸만 건사해도 됐음에도

여전히 나는 회사에 출근해서 커피를 마신다.

붐비는 전철에 끼인 채로 힘겹게 출근하다 보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다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서 2,000원짜리 생명수를

영접할 때면 또다시 힘을 얻곤 한다.

커피가 내 몸에 각성효과를 주는 건지

나 스스로가 커피를 마심으로 업무의 시작을 알리는 건지

오랫동안 해 온 습관이 하나의 패턴이 되고 말았다.


사실 나는 졸리다고 커피를 마셔서 효과를 보는 체질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커피 한 모금에 가슴이 방망이질을 한다거나

머리가 어질어질한다거나 하는 반응이 있다고 하는데

잠들기 전 커피를 마셔도 머리만 대면 3초 컷이다.

그러니 식곤증을 떨치기 위해 마시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딱 한잔,

그것도 아메리카노


직장인이 일하다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날 때가 많다

한겨울에도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하는데 나는 뜨거운 한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점심을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한여름 땡볕을

걷는 건 굉장히 시원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뜨거운 여름 볕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두 손 감싸 쥐고 걷는다.

유당불내증과 차가운 음식에 대한 민감한 대장 탓.



한 번은 유명한 카페에서 거금을 들여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이라는 커피를 마신적이 있다.

난 커피 애호가답게 허세를 부리며 이 정도는 마셔줘야지

않겠냐며 손을 덜덜 떨며 마셨다.

내가 매일 사 먹는 2,000원 커피와 어떤 게 다른지, 커피맛을 잘 모르는 나는 마실수록 입꼬리만 계속 쳐져갔다.

맛에 둔감한 탓이려니.


커피가 가장 당길 때,

쓰고 달콤하고 산뜻한 커피를 내 몸이 원할 때 마시는 순간이

가장 좋은 맛이 나는 것 아닐까.

하루의 시작을 겸허히 맞으면서

뜨거운 온기로 내 몸을 채우는 경건한 의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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