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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Dec 01. 2021

김치 히스토리? 히스테릭?

도대체 김치가 뭐라고.

시댁 밭에서 농사지은 배추

김장을 끝내고 난 후 며칠 동안 몸살을 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시댁의 토질 좋은 땅에서 심은 배추는 한 두 포기가 아니고 항상 네 접 정도의 양이다. 네 접이면 400포기인데 그 보다 항상 웃돈다. 넓은 밭에 심어 양이 작아 보이는 착시 때문일까? 어머니는 김장이 다가오면 아무래도 배추가 적을 것 같다며 또 다른 곳에서 공수해오신다. 그러면 거의 500포기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된다. 6남매의 김장 양은 300포기 정도 하면 딱 좋지만, 항상 두배다. 게다가 모두 함께 와서 하면 힘도 덜 들겠지만 빠짐없이 오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가족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있는 사람끼리 하다 보니 며칠에 걸려 한다. 



도시처럼 절임 배추를 사다가 양념을 버무리고 보쌈으로 훈훈하게 끝나는 거면 식은 죽 먹기지만 시골은 밭에 잘 자란 배추, 무, 대파, 갓을 다듬고 절이는 일부터 시작이기에 몇 날 며칠 걸린다. 몇 년 전부터 건강이 나빠진 어머니는 이제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셔서 나는 이틀 휴가를 내고 김장을 하러 간다. 다행히 시골에 살고 있는 시동생이 있어서 그나마 절임 작업은 빨리 끝난다.


저녁까지 씻어야 하는 배추


해마다 절임배추가 남는데도 어머니는 늘 부족하다고 하신다. 김치에 대한 간절함일까? 김치에 대한 자부심일까? 그토록 김치에 대한 욕심이 큰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렇게 김장을 하고도 봄이 오면, 또 여름 되면  김치를 담그신다. 이번 김장도 어김없이 올 수 있는 형제들이 몇 모여서 김장을 했다. 올해는 날씨가 일찍 추워진 탓에 배추가 얼까 봐 노심초사한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비닐을 덮었다 걷었다 하셨다. 그러서인지 별다른 피해 없이 400포기 넘는 김장을 시작했다. 배추를 절여서 씻고 갖가지 양념을 넣어 버무리고 나니 뿌듯하기도 했다. 작년보다는 맛이 덜 한 것 같아 내심 걱정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김장김치만큼 맛있는 김치도 없다.

양념 버무리기




오늘 아침에는 부지런을 떨며 회사 직원들과 나눠 먹으려고 배추김치, 파김치를 챙겼다. 거기다 내가 먹을 점심 도시락까지 챙기니 가방이 묵직했다. 남편이 전철역까지 태워다 준 덕분에 다행히 편하게 출근을 하나 싶었다. 전철이 도착하고 사람들 틈에 비집고 들어가 무거운 도시락 가방을 선반에 올렸다. 전철의 선반 위는 곡선 형태로 되어 있어서 네모 반듯한 도시락 가방이 제대로 모양새가 잡히지 않은 채 올려졌다. 이러다 떨어지는 거 아닐까 하고 손을 내리고 전철이 막 출발 한 그때 불길한 예감은 왜 항상 맞는 걸까. 김치가 든 도시락 가방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숟가락이 든 통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어딘가로 향했다. 다행히 김치는 내가 비닐로 꽁꽁 싸맨 탓에 괜찮았다. 도시락통도 널브러지지 않고 안에 있는 국물이 약간 흘렀을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고 경황이 없었지만 숟가락 통을 집어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했다.


그 모든 상황이 부끄러웠지만 겉으론 차분히 가방을 정리했다. 도시락으로 싼 비빔밥에 들기름 한 방울 떨어트린 게 흘러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내 앞에 앉은 여자였다. 계속 인상을 찌푸렸다. 도시락 가방에서 풍겨져 오는 냄새 때문이리라 생각한 나는 미안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집에서 맨날 먹는 김치인데 냄새가 좀 난다고 저리 인상을 쓸 일인가 싶어서 조금 얄밉기도 했다.


몇 정거장 지난 후 그 여자 옆자리가 나서 나는 그녀 옆자리에 얼른 앉았다. 그 여자는 계속 내 쪽으로 몸을 밀착했지만 별다른 신경 쓰지 않았다. 내릴 때가 되어 준비를 막 하려던 찰나, 그 여자가 먼저 일어나면서 내 다리를 세게 차면서 내리는 거 아닌가. 가방이 떨어진 것보다 더 황당한 일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나도 내릴 역이라 주섬거리며 재빠르게 내렸다. 환승역이라 사람들은 빽빽했지만  그 여자를 따라가서 어깨를 툭 건드렸다. 나를 왜 차고 가냐고 했다. 그 여자는 아까 도시락통 떨어졌을 때 자기 다리 위로 떨어져서 그랬단다. 이게 무슨 말인가. 보복운전은 들어봤어도 보복폭력은 이게 보복성 폭력인가? 그래서 나보고 사과하면 자기도 사과를 하겠단다. 떨어질 때 혹시나 뚜껑이 열려 김치가 널브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어 그 여자 몸으로  그 통이 떨어진걸 미처 알아채지 못했는데 그 여자 위로 떨어졌나 보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건 고의가 아니고 너님은 지금 고의잖아! 순간 나도 모르게 반말이 나왔다. 그 여자는 나를 보고 뭐야 미쳤나 봐. 이러고는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버렸다. 뒤따라가서 더해봤자 말이 통하지 않고 서로가 기분만 상할 것 같아서 그쯤에서 접었다. 아~C 조카 십팔 색 같은 게 다 있나 싶어 욕이 나왔다. 


김치가 뭐라고.

직원들이 먹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며 이렇게 싸들고 가는 건가 싶어서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평소에 나 같으면 뭐야 왜 저래 하며 뛰어가서 따지지도 못했겠지만 그러면 힘들게 담은 김치와 내 고생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오늘 아침은 달랐다. 김치의 힘이었을까.



그리곤 그 순간 어머니 생각이 났다. 우리들은 늘 조금만 하시라고 하는데 김장 때마다 그렇게 고생을 하시는 이유가 간에 기별이 갈 만큼 이해가 됐다. 부모님의 사랑과 내가 직원들에게 맛보기로 갖다 주는 마음이 감히 비교가 되지는 않겠지만. 매번 그 고생을 하면서 김장준비와 뒤치다꺼리를 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시큰해졌다.



그나저나 그 여자는 나랑 같은 역에서 하차를 하던데 사무실 근처에서 만나지 않을까? 다음에 만나면 개무시를 해줘야 할까? 그때 떨어진 통 때문에 많이 아팠냐고 물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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