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윤리학
신께 기도 하였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주세요.
신은 말하였다.
"아브라함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친 것처럼 너도 아들을 내게 바칠 수 있느냐"
신자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고는 다시 기도 하였다.
그럼 모세와 같은 믿음을 주세요.
신은 말하였다.
"모세가 사람을 죽이고 애굽에서 쫓겨난 것 같이 너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느냐"
기도하는 자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또다시 기도했다.
신이시여 토스트 예프스키 같은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세요.
신은 말하였다.
"사형대에서 너의 죽음을 기다릴 수 있느냐"
그렇다. 나는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신심이 깊은 사람이 되기 힘들다.
자식을 바칠 수도 없고, 사람을 죽이고 40년 광야 생활을 할 수도 없다.
그리고 토스트 예프스키 같은 대문호가 과연 내가 꿀 수 있는 꿈이라도 된단 말인가.
나는 더 이상 누구와 같은 믿음이나 누구와 같은 능력을 부어달라는 기도를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
가장 나 다운 기도, 가장 나 다운 간구로 나아갈 때 더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가 나올 것이다.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싶은데 평일날 보다 더 일찍 눈이 떠졌다.
조용한 새벽에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올해부터는 책을 읽고 난 후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을 필사를 하거나 간단하게 메모를 꼭 해두자고 마음먹었다.
지금까지 8권을 읽었으니 출발이 꽤나 순조롭다.
하루를 4시 30분에 시작한다는 자기 계발서를 읽으니 또다시 마음이 다잡아 진다.
책을 손에 놓고 싶지가 않다. 새로 읽기 시작한 책을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놓지 못하고 있는데
하나 둘 일어난 식구들은 아침밥 타령이다.
일주일 동안 묵혀 둔 빨래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화장실을 둘러보니 물때도 많이 껴 있다.
다 내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밥을 먹고 난 후 다들 핸드폰을 쥐고 소파나 침대로 휙 사라진다.
이것 봐요 식구님들
취식 공동 프로젝트 몰라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김영민 교수의 에세이에 나온 글을 알려줘야 할 시점이다.
내가 이럴 때 써먹으려고 메모해둔 게 있지.
설거지의 윤리학.
설거지는 밥을 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게 대체로 합리적입니다.
취식은 공동의 프로젝트입니다.
배우자가 요리를 만들었는데, 설거지는 하지 않고 엎드려서 팔만대장경을 필사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귀여운 미남도 그런 일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아브라함도 모세도 토스트 예프스키도 될 수 없다는 거 잘 아니 밥 먹은 후 설거지는
식구님들이 하시죠.
취식 공동 프로젝트 모르시나요?
그게 내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