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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Feb 14. 2021

나도 한 번 해보았습니다.

명절날 시댁 안 가기

94년도를 시작으로 명절이면 어김없이 시댁을 갔다.

당시는 고속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고, 게다가 우리는 자가용이 없었다.

서울역에서 경부선을 타고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역에 내려서 

시외버스를 두 번 갈아탄다. 

충정도 영동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전라북도 진안군  -> 진안군 **면 **리.

오전에 기차를 탈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나는 기차역에 내려서 무주로 가는 버스를 탈 때부터는 멀미를 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젖먹이 아이를 업고 버스터미널 후미진 구석의 화장실에서 텅 빈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고 또다시 버스를 타고 가면 해거름 저녁이 되곤 했다. 

그렇게 시댁 대문을 들어설 때면 내 얼굴은 식은땀에 젖어 누렇게 떠 있곤 했다.

혹시라도 아픈 티 내는 것을 들킬까 봐 아무렇지도 않은 척 부엌으로 가서 배추전을 뒤집고 설거지를 했다. 


어느 해 설날 조금이라도 덜 막힐 때 내려간다고 수를 썼는데 톨게이트 앞에서 밤을 새웠던 적도 있다.

도로 사정이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고 우리 또한 승용차를 장만하고 얼마간은 편해졌지만 시댁을 갈 때마다 나타나는 멀미는 잡을 수 없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던 차안에서 까만 비닐봉지에 두 손을 꼭 쥐고 부르르 떨던 내 손길.

멀미는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이제 한 2년만 더 지나면 나는 30년째 시댁을 가는 고참 며느리가 됐지만 여전히 시댁은 나를 부엌에 세워놓는 곳이다.

평소 같으면 2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거리라면 명절에는 5~6시간이 걸린다.

귀성은 매번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부모님은 빈 말이라도 차 막히는데 오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명절이 다가올 때 즈음이면 혹시라도 안 내려올까 봐 그러시는지 평소보다 더 전화가 빗발쳤다.


남편은 없던 효심이 결혼해서 생긴 사람이 아니고 원래 효자였다. 

인정 많고 다정한 성격 때문인지 어머니는 아들 중에 특히 더 각별한 그리움을 표현하시곤 하셨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시댁을 가야 했고 명절날도 제일 먼저 시댁에 도착해서 제일 나중에 친정을 가야 했다. 


시아버지는 형제 중에 막내라서 따로 제사를 지내거나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

게다가 종교적인 이유로 제사도 없었기에 명절날 꼭두새벽부터 음식을 차리거나 하지 않았다.

명절은 오히려 잔치음식으로 가득했고, 두부를 만든다든지 농사일을 거들고 온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특별히 제사로 인한 불편함이 없어서 시댁에 대해 불합리한 생각은 없었기도 했다.

멀미만 빼면.

차츰 멀미도 사라지고 고속도로도 더 원활해지면서 명절날 귀성 시간도 훨씬 단축되었다. 

그렇다고 남편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가지는 않는다. 

아직도 나는 시댁을 가기 전에는 가슴이 저 밑이 묵직한듯한 무거움이 있다. 

의무적인 시간이 지나 귀경길에 오르는 차에 앉는 순간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코로나로 작년 추석에 이어 올 설날에도 나는 명절을 쇠러 시댁을 가지 않았다.

작년 추석엔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첫 명절이라 친정엄마가 격식을 갖춰 차례를 지내고 싶다고 하셔서

나도 자녀로서 참석해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남편에게 상의하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흔쾌히 동의했다. 

남편은 나름 깨어있는 지식인이라 자처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회에 깊게 물든 중년이기도 하다. 그런 남편이 국가적인 차원의 거리두기 동참을 억지 춘향이든 열린 마인드로 실천을 하며 

네 식구가 둘둘 나눠서 이번 설을 보내기로 합의를 봤다.

설날에 못 가는 대신 미리 시어머님도 뵙고 오긴 했다. 용돈도 두둑이 드리고 말이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 날 

남편은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벌써 고향으로 떠났다.

이런 상황이 어색하기도 하고 내가 있어야 할곳이 여기가 아닌것 같은 혼란스러움도 살짝 들었다.

평소라면 불고기며 갈비 양념을 한다며 마트에 들러 장을 봤을 테고 이런저런 준비에 정신없었을 시간인데 

너무나 여유로운 시간이 몹시도 어색했다.

지금쯤 막히는 차 안에서 앞차의 불빛과 껴드는 차량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무념무상으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운전대만 잡으면 하품을 해대는 남편을 대신해 밤길 운전을 자처했을 것이다.


그런 어색함을 안고 퇴근 후 집으로 곧장 가는 게 너무 아까웠다. 

어떻게 얻은 나만의 시간인데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서점을 가서 여유 있게 책을 골라 보면 어떨까 생각하다  문득 눈에 들어온 조그만 카페가 보였다.

연휴 전날이라서 카페 안은 한산했다. 은은한 조명과 높은 천장이 주는 탁 트인 상쾌함 

푹신한 소파의 아늑함이 평화롭게 만들었다.

조용한 음악이 흐리고 의자 끄는 소리와 두런거리며 얘기하는 소리만이 들린다.

커피 한잔과 들고 온 책 한 권을 펼쳐 든다. 


고통도 오래지 않아 멈추듯이 코로나도 머지않아 곧 멈추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막히는 차를 타고 시댁을 가고 전을 부치고 며느리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의무행사를 할 것이다. 어쩌면 그 일도 홀로 계신 어머님이 생을 다하시는 날에는 또 다른 방법으로 명절을 보내게 될 터.

기대는 하지 말고 최대한 즐기는 명절을 만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명절을 축제처럼 떠들지 말고 조용히 일상처럼 지내면 어떨까? 기대하면 실망도 크니까 말이다.

평범한 명절. 축제같은 일상이라면 좀 덜 지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며느리로서 해내야 하는 명절은 즐겁지 않으니  다른 이름으로 명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어떤 이름을 먼저 꺼내 써볼지 내일부터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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