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눈으로 타인을, 또 자신을 바라보는가
연상호 감독, 박정민, 권해효 주연의 영화 '얼굴'을 보았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3초 전이었다. 불이 켜지고 영화가 끝났지만, 막판 결정타를 맞은 나는 자리에서 엉거주춤 마지못해 일어났다. 감독은 마지막 여운을 정리할 틈조차 허락하지 않고 긴장감 있게 영화를 만들었다.
연상호 감독은 천만 관객이 선택한 <부산행>으로 유명하다. 부산행은 한국형 좀비물인데, 아포칼립스 속 인간의 두 얼굴을 보여주며 “너는 어느 쪽에 속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악함 속에 약함이 있어 연민이 생기기도 하고, 선함 속에 강함이 있어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독특한 감성의 영화다. 이번 '얼굴'에서도 감독의 아이러니한 감성의 결을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은 연상호 감독이 직접 집필한 그래픽 노블에서 출발했다. 또 제작비 2억, 촬영 기간 3주라는 최소한의 조건 속에서 제작 된 것으로 유명하다. 감독이 작품의 마스터이자 창작의 뿌리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픽 노블은 만화적 그림체에 문학적 서사를 담아낸 작가주의적 만화책이라 보면 된다. 흔히 만화가 허구적 과장으로 가득한 ‘불량식품’ 같다면, 그래픽 노블은 사실적 배경과 현실 감성을 담은 '학교 앞 분식점’에 가깝다.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든든한 한 끼가 될 만한 메뉴다.
이야기는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이 40년 전 실종된 어머니 정영희의 백골 사체 발견을 계기로 진실을 파헤쳐 가는 구조다. 박정민은 아들 임동환과 젊은 시절의 아버지 임영규를 1인 2역을 소화했는데, 두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를 뚜렷이 구분하며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줬다.
스토리는 꼬이고 또 꼬였다. 하지만 전각 장인 임영규의 자백덕분에 스토리의 복잡하고 불확실한 실타래가 한순간에 정리된다. 관람객의 입장에선 스토리를 잘 따라오라는 감독의 친절한 배려라 느껴졌다. 영화 속 임영규의 아내 정영희는 ‘못생겼다’, ‘똥꿀래(똥내의 방언)’, ‘괴물’이라는 얼평을 듣는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정반대다. 청풍피복에서 재봉사의 시다로 성실히 일하며, 누구보다 선하고 정직하게 살아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단체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녀를 한 목소리로 “못생겼다”라며 낙인찍는다.
우리 사회는 외모지상주의에 깊이 잠식당해 있다. 얼굴은 개인의 성품이나 내면보다 더 먼저 평가의 대상이 된다. 취업 면접장에서, 학교 교실에서, 심지어 일상의 만남 속에서도 얼굴은 보이지 않는 신분증처럼 기능한다. 영화 속 영희는 그 잣대의 희생양이었다. 선하고 정직한 행동을 해도,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만을 입에 올릴 뿐이었다.
그렇다면 아름다음은 무엇일까? 적어도 눈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임영규가 자신이야말로 아름다움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은 ‘보이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하는 방식’의 문제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만약 우리가 '보여지는 얼굴'로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억울한 영희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받는 사회가 돼지 않을까?
하지만 나조차도, 그 비판을 피해가지 못함을 고백한다. 타인을 의식하기 때문에 외모에 신경을 쓰며 산다. 잠깐 집 앞 슈퍼를 가도, 립스틱을 칠한다. 고작 립스틱 하나 칠한다고, 대단히 예뻐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웃에게 최소한의 민망한 민낯을 평가받고 싶지 않다. 이 영화덕분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겉모습’에 휘둘리고 진짜 아름다움을 놓치며 살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영희가 영화 속에 영규에게 묻는다.
“나쁜 놈이 착한 척하면 그건 나쁜 걸까요? 착한 걸까요?”
나는 한동안 그 대답을 고민해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