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얻은 더 큰 자유
나는 때로 도시의 익명성이 편했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누구의 관심이나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편리함. 하지만 그 익명성이 깊어질수록, 마음 한편에는 불안이 커져갔다. 문을 잠그고, 또 한 번 확인하는 일상. 이것이 안전을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했다.
“남아공은 아름다운 나라예요. 사람들도 좋고요. 하지만….”
온라인 화면 너머로 만난 Lucason(가명)은 차분한 목소리로 고향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내가 상상했던 아프리카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만연한 부패와 극심한 범죄율. 특히 그녀가 이주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한밤중 비명 소리 때문이었다.
“그날도 새벽 1시까지 문서를 정리하다 잠들었죠. 그런데 새벽 3시에 옆집 여자의 비명 소리에 잠이 깼어요.”
보안업체 직원과 짜고 전기 담장을 해제한 강도 두 명이 옆집에 침입한 것이었다. 두 살배기 딸을 둔 옆집 여자의 절규는 고요한 밤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 그날 이후, Lucason은 공포로 매일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범인들이 자신의 집을 거쳐 옆집으로 갔다는 사실 때문에, 작은 소리에도 ‘다음은 내 차례일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 무렵, 몇 년 전 먼저 몰타로 떠났던 가장 친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냥 몰타로 오는 게 어때?” 친구의 제안에 그녀는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였지만, 더 이상 불안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100여 일 만에 집과 살림을 모두 팔고, 그녀는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로 향했다.
“남아공에서는 매일 밤 모든 창문과 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는 게 일이었어요. 그건… 좋은 삶의 방식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차 문을 잠그지도 않고, 차 안에 열쇠를 그냥 두고 다녀요. 여름엔 창문을 열어두고 자고요. 완전히 다른 삶이죠.”
Lucason이 정착한 곳은 길이 14km, 폭 7km에 인구는 고작 2만 9천 명의 조용한 섬이다. 그녀는 이곳을 ‘다른 행성’ 같다고 표현했다. 이 섬에는 오래된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가장 신기했던 건 시에스타(Siesta) 문화였어요. 상점들이 아침 9시에 열어서 12시에 닫고, 오후 4시에 다시 열거든요.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죠.”
하지만 불편함보다 더 큰 것은 정겨움이었다. 섬의 노인들은 굳이 집을 나설 필요가 없다. 아침이 되면 ‘빵빵-’ 경적을 울리며 채소 트럭이 마을을 돌고, 그다음엔 갓 구운 빵을 실은 트럭, 뒤이어 그날 아침 어부들이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을 실은 트럭이 차례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각자 장바구니를 들고 나와 필요한 만큼만 사요. 포장도 없죠. 흙이 묻어있고, 가끔은 달팽이가 붙어있기도 해요. 집에 와서 씻으면 되니까요. 훨씬 저렴하고 신선하죠.”
가장 놀라웠던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믿는 방식이었다. 가스통을 배달하는 월요일, Lucason은 출근해야 할 경우 현관문 앞에 빈 가스통과 돈을 함께 놓아둔다. 거스름돈이 필요하면, 퇴근 후 돌아왔을 때 새 가스통 옆에 정확한 거스름돈이 놓여있다. 범죄가 거의 없는 섬이기에 가능한 일상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땐 사람들이 좀 차갑다고 느꼈어요. 남아공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건네는데, 여기 사람들은 제가 인사를 해도 빤히 쳐다보기만 했죠. 하지만 제가 휴가만 보내고 떠나는 뜨내기가 아니라, 마을의 일원으로 계속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들은 서서히 저를 받아들여 주기 시작했어요.”
Lucason의 삶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다. 그녀는 집주인이 더 이상 쓰지 않는 오래된 가구들로 채워진 집을 저렴하게 빌려 살고 있다.
“이 아파트에서 제 소유는 컴퓨터와 옷가지 정도가 전부예요. 저는 양보다 질을 선택했어요. (I chose quality over quantity) 내 집, 내 가구는 없지만, 대신 평화롭고 안전한 삶의 질을 얻었죠.”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물건을 갖는 것이 일반적인 행복의 척도인 세상. Lucason은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큰 자유를 얻었다. 그녀는 원한다면 언제든 짐을 꾸려 포르투갈, 그리스에서 몇 달씩 살 수도 있다. 그녀를 묶어두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Lucason이 찾은 ‘차 문을 잠그지 않아도 괜찮은 곳’은 단순히 범죄율이 낮은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은 이웃의 얼굴을 알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기꺼이 서로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작은 공동체였다. 어쩌면 진정한 안전은 더 높은 담장과 더 견고한 잠금장치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과 느슨하지만 따뜻한 연결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1. 몰타 공화국
지중해 중심부에 위치한 군도 국가로, 몰타, 고조, 코미노 등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며, 몰타어와 영어가 모두 공용어로 사용된다. 온화한 기후와 역사 유적, 지중해 특유의 자연환경 덕분에 유럽에서 인기 있는 휴양지이자 문화 관광지로 꼽힌다.
2. 시에스타
스페인과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나타나는 전통적인 낮잠 문화다. 가장 더운 오후 1시~4시 무렵 휴식을 취해 체력을 보충하고 저녁 활동을 준비하는 생활 방식이었다. 오늘날 대도시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남부 지방이나 소도시에서는 일부 가게와 가정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