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스무살
<BT*>의 신입생 환영회를 다녀온 뒤 기현은 점점 더동아리에 녹아들었다. 편의점 알바를 하지 않는 시간은 대부분 BT의 동방으로 가서 시간을 보냈다.
*블루트레인 동아리원들은 편의상 동호회 이름을 줄여서 BT라고 부른다
기현은 동아리원들의 얼굴이 꽤나 익숙해졌다. 특히 신입생 환영회를 통해 동기들끼리 서로 얼굴을 익혀서 자주 어울렸다.
그러나 기현과 동기들은 아직 동아리방에서 악기를 연주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왜냐하면 동방의 악기들은 정기공연을 앞둔 선배들이 시간을 정해서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아리 방 한켠에는 큰 화이트보드 달력이 있었고 각 시간대별로 누가, 어떤 악기를 사용하는지 빽빽하게 스케쥴링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곧 연주를 할, 아니 해야만 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BT의 신입생들은 전통적으로 봄 정기공연은 스태프로 조연출을 하며 공연경험을 쌓고, 본격적으로 가을 정기공연에 연주를 하곤 했다. 신입생들은 가을공연에 1부 오프닝 다음 순서를 데뷔무대로 부여받았다. 선배 한두 명이 책임을 지고 팀을 이끌고, 나머지 세션은 신입생으로 채워져 데뷔무대를 서곤 했다. 데뷔무대에 1학년때 오르지 못하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져 동아리를 나가는 일도 더러 있었다.
따라서 BT신입생의 첫 학기는, 정기공연에 대한 부담 없이 동아리생활 적응을 위한 연습시간이었고 한 편으로는 하반기에 있을 오프닝 무대에 누가 오를지를 판가름하는 암묵적인 경쟁의 시간이었다.
다행히 기현은 동기중 유일한 드러머였고, 새로운 신입생이 중간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무대에 오르는 것이 확정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기현이 지금은 드럼에 대해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그런 상황에서 4월 중순쯤 되자 수많은 신입부원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여러 군데 동아리를 걸쳐서 활동하던 신입생들은 BT의 전통적인 무관심에 지쳐 떨어져 나갔다. 혹은 경쟁이 치열한 세션에서 실력이 좋은 경쟁자가 있는 경우(피아노가 그런 현상이 심했다.)에도 이탈자가 많이 발생했다.
남은 신입부원 동기들은 열댓 명 정도 되는 듯했다. 신입부원들은 나이가 가장 많은 ‘형우’ 중심으로 잘 뭉치게 되었다. 형우는 다른 학교를 이 년 동안 다니다가 수능을 다시 보고 기현의 학교에 신입생으로 들어온 늦깎이 신입생이었다. 그래도 이년 먼저 대학생활을 경험해 본 까닭에 형우는 동기들보다 어른스러웠고, 선배들과도 동갑이거나, 바로 윗 학번인 13학번 선배들보다는 연장자인 경우도 있어서 선배들과도 잘 어울리고 신입부원 입장을 잘 대변해 주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형우와 신입부원들은 학교 앞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시험을 잘 봤니, 누구랑 미팅했니, 어제 게임을 이겼니 등등 늘 하던 따분한 얘기가 오고 가던 중 형우가 동기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얘들아 우리, 우리끼리만 엠티 가자”
형우에 급작스러운 제안에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기현과 동기들은 모두 기껍게 찬성했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 간 결과, 최종적으로 그들은 가평에 있는 펜션을 가기로 했다. 저녁에는 바비큐도 해 먹고, 낮에는 펜션 앞 잔디에서 미니게임도 하기로 했다. 날짜는 5.3일 토요일. 5.5일 월요일이 공휴일로 엠티를 다녀온 뒤 부담도 없을 것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총무는 새롬이 맡기로 했고, 기현을 비롯한 다른 동기들은 각자 역할을 맡아 엠티를 준비하기로 했다.
얼마 뒤 시간이 흐르고 BT신입부원 엠티날이 왔다. 약속시간은 9:30 청량리 롯데마트 앞. 기현은 들뜬 마음을 안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자취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