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일기. 남편의 괜찮아라는 위안에도 내가 계속 공포에 시달렸던건
내 남편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평생을 꿈꿔왔던 남자다. 책임감 있고, 가정적인 남자. 회사 내에서 능력도 인정 받고 진급도 동기들보다 빨리했다. 퇴근 시간은 보통 일곱시 전후로 늦지 않다. 담배를 하지 않고 술도 즐기지 않는다. 주말은 출근하지도 않고, 개인적인 약속도 없어 주로 집에서 나와 함께 보낸다. 집순이인 나에게 운명같은 집돌이 남편이다. 게다가 꽤 잘생겼다!
아직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아서 그런가. 나는 남편과 내가 천생연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아이를 대하는 방식도 우리는 참 다르다.
남편과 나 모두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친구의 아이를 실제로 만났을 때, 아이를 다루는 데는 남편이 훨씬 능숙하다. 나는 뭐랄까, 인스타그램에서 친구들의 아기 사진을 보며 좋아요를 누르고 귀여워하는 쪽이다. 다만 실제로 아기를 만나면 굉장히 쭈뼛쭈뼛해 한다. 친구가 옆에서 아기 손이라도 만져보라고 부추겨 주면 그제야 조심히 오동통한 손가락을 만져보고 최애 아이돌을 만난 팬의 기분을 느낀다. 그런데 남편은 나와 다르다. 아직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갓난 아기든, 어느 정도 의사 표현을 하는 2-3살 아이든 상관 없이 무척 다정다감하게 다가가서 금세 친해진다.
그런 남편을 보며, 신혼 초기에는 굉장히 기뻤다. 내 남편은 훌륭한 아빠가 될거야.
내 남편이 아이를 좋아한다는 사실.
내가 난임인 걸 알게 되고 나서는, 그 사실이 되려 나를 괴롭혔다.
시험관 시술을 결정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크게는 난임의 원인이 아내에게 있는 경우, 남편에게 있는 경우, 아내와 남편 모두에게 있는 경우, 그리고 아무 이유도 없지만 자연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 그 중 우리 부부는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남편은 모든 수치가 평균보다 좋았다.
나의 난임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결정되었다. 내 엄마의 뱃속에서 내가 태아에 있을 때, 자궁의 발달이 끝까지 완성되지 않았고, 그 결과 자궁이 불완전한 두 개인 중복 자궁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건 내 엄마의 탓도, 내 탓도 아니다. 남편은 물론 이제껏 단 한 번도 나를 탓한 적 없다. 내가 혹여나 풀이 죽거나 속이 상할까봐 남편이 내 눈치를 봤으면 모를까.
그럼에도 나는 항상 남편에게 미안했다. 처음 난임 판정을 받았을 때는, 나 혼자 심각하게 이혼을 고민했을 정도로. 아이를 진심으로 바라는 남자가, 가정을 꾸릴 자격이 충분한 남자가 괜히 나를 만나서.
지금이라도 새로운 여자를 만나 아이를 둘 낳고, 평생 아이 키우는 보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남자를
괜히 내가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는 밤낮으로 시달렸다.
작년 1월, 1차 시험관 시술을 진행했다. 올해 1월에는 5차 시술을 진행했다.
다섯 번 연속 임신 실패였다.
남편은 나보다 인내심이 많은 편이다. 매 번 시술 때마다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
"이번에 잘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긴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하자."
임테기가 단호박 한 줄일때도, 피검사 결과 분명한 비임신이었을 때도 남편은 든든했다.
"실망하지마. 이번이 때가 아니었나 보지! 다음 차수까지 우리 음식 잘 챙겨먹고 몸 잘 만들어 놓자!"
자꾸만 눈치 보고 우울해 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일부러 애교가 넘치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달래주었다.
내가 다시 웃고, 화이팅할 수 있도록.
남편 덕에 나는 오래 지나지 않아 기운을 차렸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공포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러다 진짜 끝까지 임신이 안되면 어떡하지.
이 글을 쓰는 오늘로부터 사흘 전, 나는 여섯 번째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처음으로, 두려움 없이 시술에 임했다.
시술 일주일 전에, 남편이 나에게 진지하게 해주었던 말 한마디 덕분이다.
수면 마취로 진행하는 시험관 시술. 매일 아침마다 맞아야 하는 근육 주사. 매일 세 번씩 챙겨먹어야 하는 호르몬제와 각종 영양제. 호르몬 때문에 들쑥날쑥한 컨디션. 이 모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내가 이 시험관 시술을 공포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했던 남편의 말은,
나는 우리 둘이 살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어
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는 계속 이 말을 기다려왔던 것 같다.
그 동안 나는 남편의 "걱정마 잘될거야"라는 위로를 혼자서 멋대로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임신이 되어야 해'라는 부담으로 해석해왔다. 그래서 '그러다 끝끝내 안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내어준 말. 아이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 있어 나는 처음으로 온전히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책임감도 있고 가정적인 남자라, 아이가 없으면 남편이 불행할 것만 같았는데. 나 때문에 남편이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말이다.
물론 나도 남편도 아직 간절히 아기를 기다린다. 하는 데까지는 계속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다음주 피검사 결과에서 이번에는 처음으로 임신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지금도 매일 기도한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의 삶은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