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일기. 알고보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의자
여자가, 다리를, 벌린다. 이 세 단어의 조합은 늘 나를 눈치보게 했다. 하나의 단어만 다른 단어로 교체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남자가', 다리를, 벌린다 하면 지하철이나 쇼파에서 늘어져 앉아 있는 모습이 연상될 뿐이고 ; 여자가, '팔을', 벌린다 하면 반가운 이를 안아주겠거니 싶고 ; 아니 여자가 다리를 '뻗는다'든가 '떤다'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은데 왜 여자가 다리를 벌리는 것만 문제가 되는 걸까.
어릴적부터 나는 의자에 앉을 때는 무릎을 모아 공간을 최대한 적게 차지하는 습관을 익혔다. 내가 조금은 철이 든 십대 후반부터 '다리를 벌린다'는 표현은 내가 함부로 언급해서는 안되는, 마치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와 같은 영향을 내게 행사했다. 전부터 남동생이 아닌 나에게만 금지되었던 이건, 함부로 말할 경우, 자칫하면 성적인 행위를 연상시킬 수 있는 적나라한 표현이었다. 이십대 초반 처음 1:1 PT를 받던 날, 남자 트레이너 앞에서 '이너싸이' 라는 기구에 앉아 다리를 크게 벌렸다가 오므렸다 하는 동작을 할 때도 나는 괜히 신경이 쓰였다. 서른이 훌쩍 넘어도 조금도 대담해지지 못한 지금, 나는 여러 번 망설이며 이 이야기를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쓰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꼭 짚어두고 싶다. 이제서야 나는 알겠다. 여자로서 다리를 벌리는 상황이 종종 전혀 성적이지도 은밀하지도 않고, 오히려 비장함과 진지함을 동반하며 일어난다는 것을.
결혼 전 이십대 초반, 자궁경부암 검사를 위해서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어떤 날, 누구랑, 어느 병원에 갔는지, 그 배경에 관한 컨텍스트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날 기억에 대해 선명한 건 단 하나이다. 난생 처음 '굴욕의자'에 올라선 것. 의자 위에서는 늘 양쪽 다리를 꼭 붙이고 앉아왔던 나인데; 이 의자는 왼쪽 오른쪽에 다리 받침대가 하나씩 있어, 무릎 뒷쪽을 한 쪽씩 걸쳐올려 놓으니 다리가 환하게 벌려졌다. 당시 담당의는 하필이면 남자였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가슴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에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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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병원 3년차. 시험관 2년차. 나는 그 '굴욕의자'를 셀 수 없는 만큼 다시 마주해야 했다.
십 년 전 처음 낯선 사람 앞에서 맨 다리를 벌렸을 때 느꼈던 불쾌함,
(진료를 받을 때 의사는 사람으로 의식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나는 이 굴욕 의자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지도 못했지만 굴복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씩 무심해졌다.
나는 한 때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의자에 앉아,
지난 며칠간 아침마다 내 손으로 놓은 배주사의 영향으로 내 안에 난포가 몇 개가 자랐는지 궁금해하며 초조하게 기다렸고,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잘 자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했으며, 자궁 내막이 적당히 두꺼워졌다는 담당의의 한 마디에 기뻐했다. 난자 채취와 이식 날짜를 잡기 위해 굴욕 의자에 앉은 날에는 더 없이 절박해졌다. 시험관 한 차수가 실패로 끝나서 또 한 번 지옥같은 절망을 겪고 나서도, 일주일쯤 후 생리 4일차에 나는 다시금 굴욕 의자에 올라 앉았다.
나는 이 의자 위에서 늘 간절했다. 굴욕감은 느낄 새도 없이.
굴욕의자 앞에서 점점 무심해지는 과정, 나는 내가 난임인 탓에 이 과정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친구들과 산부인과를 방문했다는 정도의 대화를 주고 받기는 하지만, 진료실 안에서의 상세한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러다 최근, 둘째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친구와 대화하던 중, 그녀의 임신과 출산기를 처음으로 생생하게 듣게 되었다. 난임 검사 한 번 해본 적 없이 자연 임신을 한 그 친구도 임신 과정에서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며 매 번 굴욕 의자에 앉아야 했다고 한다. 출산 당일에는 남자 의사와 여러 명의 간호사 앞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다리를 벌리고 있어야 했는데, 산통이 너무 심해 수치심 따위는 느낄 새가 없었다고 한다. 내가 너무 늦게 알았지만, 이미 내 주위의 수 많은 친구들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모두 겪어본 과정이었다. 나는 왜인지 안심이 되기도 했고 울컥하기도 했다.
그저 여자로서 겪는 일이다. 어른이 되는 일이다. 여자로서 살아가는 한 과정이다.
이 글을 쓰려고 검색 엔진에 '굴욕 의자'를 검색해보니,
"요즘 10대들 사이에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산부인과의 굴욕의자다"라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굴욕의자를 꺼려 몸에 이상이 있어도 산부인과에 방문하지 않는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처럼
'여자들이여 다리를 활짝 벌려라' 라고 말할 용기까지는 내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치과나 내과, 이비인후과를 방문하듯이 자연스럽게 산부인과를 찾아가는 여성들이
'굴욕 의자', 아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준비하는 이 '생명의 의자' 앞에서 위축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 모르지 않는다면 그것을 엉성한 뚜껑으로 덮어 두거나 나일론사로 봉합하는 인간이 된다는 뜻이었다. 산부인과의 검사대에 올라가는 여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몸이 어떤 자극이나 모욕에도 반응하지 않는, 동요나 서글픔 따위를 제거한 무생물에 가까운 오브제라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었다. 그 과정을 흔히 정상 내지는 보편이라고 간주되는 경로를 거쳐 통과한 이는, 타인과의 어지간한 신체적 접촉 정도로는 눈을 부라리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네 이웃의 식탁 - 구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