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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바람 Oct 16. 2019

내가 너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난임 일기. 시험관 기간 중에 친구들의 임신 소식을 듣는 일

내가 시험관 시술 두 번째 결과를 듣고난 며칠 후, 회사에서 육아 휴직으로 일 년 넘게 자리를 비웠던 팀원이 복직을 했다. 나는 피검 0.03이라는 비임신 수치에 며칠 째 풀 죽어 애써 우울한 표정을 숨기고 있었고, 팀원은 오랜만에 복귀한 사무실 분위기에 달뜬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그 동안 매일 아기를 돌보느라 혼잣말만 늘고 있었는데 사무실로 돌아오니 성인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어 무척 즐겁다고 했다.


밤낮없이 집에서 아기와 둘이 함께 있다가 회사로 돌아온 팀원은 쌓아온 이야기 소재가 아기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육아 휴직을 다녀온 친구들은 늘 그랬다. 당시 나는 회사에 나의 임신 시도에 관한 모든 사정을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함께 웃으며 그 대화에 참여했다. 화기애애한 우리 팀은 점심에도 회의 전에도 휴게실에서도 늘 복직한 팀원의 아기 이야기와 선배 엄마 아빠인 동료들의 육아 노하우 전수로 대화를 꽉꽉 채웠다. 나는 가끔 대화가 끝나면 몰래 화장실에 가서 조금 울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중 한명은 내가 난임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3개월 후에 결혼을 했다. 내가 매 달 병원에 방문하며 과배란 약을 먹고 초음파로 배란일을 확인하는 일 년동안 친구는 신혼을 즐기겠다며 피임을 했다. 내가 조금씩 마음 속으로 시험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시작할 때 친구는 임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마음 속 결심을 시행한 건 친구가 나보다 두 달 빨랐는데, 처음으로 피임을 하지 않았던 그 첫 달에 친구는 임신에 성공했다. 나는 그 친구가 임신한 기간 내내 그녀의 곁에 있었고, 친구가 출산하고 나서는 여러 번 집으로 찾아가서 그녀의 아들을 보고왔다. 아기들은 다들 이쁘다고 하지만, 친구를 닮아서인지 더욱 이쁘고 잘생기고 사랑스러운 아기였다. 아기는 어느새 돌이 지났고, 친구는 육아 휴직에서 복직한 후 슬슬 둘째를 생각하고 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둘째 임신을 응원하고 있다. 동시에 조금은 조바심이 난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임신이라는 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거. 


사실 그 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노력과 도전들은 한정된 자리를 얻기 위한 타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입시 경쟁에서, 취업 경쟁에서, 진급 시험도. 친구들과 3:3 미팅 자리에 나갔을 때도 다 경쟁이었다. 하물며 그런 경쟁 속에서도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했을 때 남탓을 할 수는 없었다.


임신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건 오로지 나와 내 남편의 과제다. 친구가 여섯 명이 임신을 하든 열다섯 명이 임신을 하든 나의 임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여기서의 상관 관계는 1%도 0.00001%도 아닌 0이다. 나의 친구가 지난 달에 먼저 임신을 했으니 나의 임신 확률이 0.1% 낮아지는 방식이 아니다. 이건 내가 임신을 준비하기 전부터 분명하게 알고 있던거다.


그런데 요새는 누군가의 임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기쁜 소식을 전해 듣는 그 자리에서는 티를 낼 수 없어서 최대한 웃으며 축하 인사를 전하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서는 혼자 펑펑 운다. 울고, 세수를 하고, 티슈로 얼굴을 닦고, 잠시 숨을 돌린다.

그리고 그 곳으로 돌아간다. 새 생명의 탄생을 설레하고 축하하는 자리로.


'내가 너를 축하하는 마음은 늘 진심이야.

내가 우는 건, 너를 질투해서도 너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도 아니야.

그냥 나의 기다림이 생각보다 길어진만큼 내 마음도 작아졌나봐. 네가 조금 부러워서 그래.

그래도,'


"너의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해!"



나이가 서른 넷이다 보니 주위에서 계속 아끼는 사람들의 임신 소식과 출산 소식이 들려온다. 시험관 생활이 나도 이제 1년 10개월째에 들어서는데, 이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한 후 바로 다시 둘째를 임신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내가 22번째 임테기 한 줄을 확인하는 기간 동안 한 가정에는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고, 한 부부의 삶이 아기를 중심으로 완전히 재구성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요새 별 일 없니?"

나는 답한다.

네. 저희는 늘 똑같아요.


그가 다시 말한다. "그래. 별 일 없는게 제일 좋은거야."

나는 하고싶은 말을 꾹 삼킨다.


'사실은 별 일이 생기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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