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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바람 Nov 08. 2019

마음을 비우면 정말 아기가 찾아올까

난임 일기. 시험관 시술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자연 임신이 바로 되지 않았을 때 들었던 말들

- 조급해하지 마. 나도 처음에 바로 임신이 안돼서 걱정했는데 4개월 만에 겨우 됐어.

- 네가 배란 일자를 잘못 알고 있는 걸지도 몰라. 달력 믿지 말고 병원 가서 정확하게 날짜를 받아봐.

- 나팔관 조영술 검사를 받으면 그 달에 임신이 잘된다더라.

- 너무 걱정하지 마. 정 안되면 시험관 시술도 생각해봐. 내 친구는 임신이 계속 안돼서 시험관 시술했는데 한 번에 쌍둥이를 가졌어.


시험관을 시작한 후에 듣는 말들

- 단백질을 많이 먹어. 내 시누이는 이식하고 매일 추어탕만 먹어서 바로 됐잖아.

- 포도즙을 먹어. 나는 매일 아침마다 포도즙을 먹어서 우리 애 가졌어. 이제는 포도에 포 자만 들어도 물려.

- 먹는 거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스트레스 안 받는 게 최우선이더라.

- 휴직을 해보는 건 어때? 우리 팀 차장님은 회사 그만두자마자 바로 임신됐던데.

- 나도 시험관 했는데 이식하고 나서 일주일 동안 휴가 쓰고 침대에서 누워만 있었잖아. 와식 생활이 정답이더라고.

- 한약을 지으러 가자. 엄마 친구 딸은 어디 한의원에서 한약 지어서 먹자마자 결혼 3년 만에 바로 아기가 들어섰단다.


가장 많이 듣는 말들

- 오래 기다린 만큼 더욱 이쁜 아기가 찾아올 거야.

- 마음을 비우면 아기가 찾아오더라.


진짜, 그런가요?



내년 1월에는 시험관 시작한 지 3년 차에 들어서게 된다. 그동안 신선과 냉동 합쳐서 여섯 번 착상에 실패했다.

내가 체감하는 시중의 임신의 꿀팁과 조언들은 모두 가짜다. 내가 느끼는 임신의 비밀은 "될놈될"이다. 될 사람은 뭘해도 되고 안될 사람은 뭘해도 안된다. 누구는 엽산 한 번 안 먹어보고 임신이 된 줄도 모르고 밤새 술도 마시고 등산도 하고 해외여행도 하다가 어느 순간 테스터기 해봤을 때 두 줄을 보더라. 나는 온갖 영양제에 한약을 복용하고, 주사와 수액으로 몸을 무장하고, 이식을 전후로 매일 아침 엉덩이 주사(슈게스트)를 맞으며 호르몬 수치를 조절하는데도 안되더라.


일부러 매 번 다른 방식을 시도해보고 있다. 어떤 때는 일주일 휴가 쓰고 누워만 있어봤고, 어떤 때는 밀가루를 완전히 끊고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챙겨 먹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나에게 맞는 방법'은 찾지 못한 셈이다. 아예 회사를 휴직해야 하나 고민은 들지만 시험관 시술 비용은 땅을 판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막막하다.


아직 시도를 못해본 방법은 또 있다. '마음을 비우는 것.'

자연 임신을 시도하고, 시험관 시술을 하고, 냉동 이식과 신선 채취 사이 몇 달을 몸 챙긴다고 쉬어가고, 그런 모든 날들 중에 마음을 온전히 비우는 것만은 잘 되지 않았다. 아이를 기다리는 간절함을 포기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하라는 데로 해봤는데 안되서, 하라는 데로 할 수 없어서 아직 시험관을 진행하고 있다.


결국 어떤 위로도 나에게는 정답이 아니었다.



그런데 모든 위로가 나에게 힘이 되었다.


내가 태어나서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았던 적이 있던가 생각해본다. 늘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나의 하소연들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어떤 말로 위로를 건네야 할지 늘 고민하지만, 중요한 건 그 말을 애써 꺼내어주는 마음에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아픔에는 위로를, 기쁨에는 축하를, 타인의 마음에 말 한마디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쓰고 보니 오늘의 글은 내가 가장 피하고자 하는 '훈훈한 교훈으로 마무리하는' 글이 되어버렸다. 톡톡 튀고 느낌 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감정에 취하면 늘 진부해져 버리는 게 문제다.


마찬가지로 진부하고, 금세 휘발되는 한 마디가 될지라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간절하게 바라는 일이 꼭 이뤄지기를, 저도 응원합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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