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이라는 단어의 무게
80명 가까이 되는 우리 부서 사람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옆팀 차장님은 기러기 아빠다. 아내가 중학생 아이와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호주에 가서 살고 있다. 또 다른 팀 차장님은 얼마 전에 반포에 40평대 아파트를 구입했다. 얼마 전에 휴직에서 복귀한 차장님의 휴직 사유는 아내가 많이 아팠기 때문이며, 그 전에 휴직했던 다른 차장님의 휴직 사유는 의사인 아내가 병원을 개업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내가 먼저 물어본 적 없는데 어느 순간 그냥 알게된 정보들이다.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있던 것들도 있다. 나랑 가끔씩 협업하는 여자 차장님은 인공수정 시술로 아이를 낳았고, 우리팀에서 쌍둥이를 키우는 여자 차장님은 시험관 시술로 아이들을 낳았다. 옆팀의 또다른 여자 차장님은 시험관 시술을 위해 1년간 휴직했다가 임신이 되지 않아 그냥 돌아왔다. 누가 언제 나에게 알려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러면서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일들이다.
서로의 TMI가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에게 공유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난임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난임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첫 번째 이유는 '굳이'에 있었다. 직장 생활 중에 생리통이 심해서 연차를 내야 했던 날들, 나는 늘 남자였던 팀장들에게 '몸이 안좋아서', '배가 아파서' 정도로 둘러서 말하고 넘어갔다. 생리통이라는 단어가 금기어가 될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팀장 자리로 찾아가 얼굴 보고 조퇴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혹은 아침 일찍 연차를 내고 싶다는 카톡을 보낼 때, '굳이' 생리통이라고 콕 집어서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떄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난임 병원을 다닐 때에도 '굳이' 난임 병원이라 말하지 않고 그냥 병원에 다녀오겠다고만 했다. 각종 난임 검사를 진행하고 먹는 약을 처방받아 과배란을 시도한 난임 병원에서의 첫 2년을 나는 굳이라는 핑계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기며 보냈다. 비정상적인 호르몬 조절 때문에 수시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감정을 혼자 감당하면서.
솔직히 말하자면, 숨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만약 내가 심장이 아팠거나 위가 안좋았다면 서슴치 않고 구체적으로 말했을 것이다. 팀장님, 제가 심장에 / 호흡기에 / 위에 / 간에 질병이 있어서 당분간 병원에 자주 다니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난임은 왠지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섣불리 언급하기엔 그 단어의 무게가 천근만근이었다. 팀장님, 제가 자연 임신이 잘 되지 않아 난임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라고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보면 왜 그랬나 싶다. 난임이 죄도 아니고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고, 그냥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아파서 병원을 가는 거랑 다를 것도 없는데. 그러나 이런 생각도 내가 이제 곧 시험관 시술 3년차에 들어서는 입장이니까 겨우 하게 된 거고, 막 시험관 시술을 고민하던 당시에는 전혀 쿨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했다.
결국 나의 경우, 2년 동안 난임 병원을 다니며 과배란 시도할 때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다가 시험관 시술에 들어가게 되면서 겨우 팀장과 직속 사수에게 그 사실을 밝혔다. (직장 생활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몸의 상태에 맞춰 한 달동안 주 3회 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 대부분 업무 시간 중에 방문하게 된다 - 유명한 선생님께 진료를 받는 경우는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기본 한 시간은 대기해야 하고 -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약도 먹어야 하고 주사도 맞아야 하고 - 채취와 이식 때 연차를 내야 한다. 거기에 일반 과배란이나 인공수정과는 차원이 다른 호르몬 조절로 인한 감정 기복과 컨디션 하락을 견뎌야 하는 건 덤이다. 그걸 해낸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나의 경우 팀장 / 사수에게 각각 면담을 신청하면서 시험관 시술 계획과 임신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그에 맞는 업무의 조율도 요청했다. 그렇게 시작한 시험관 시술이 2년동안 계속되면서, 중요한 프로젝트, 장기 프로젝트, 새로 들어오는 업무에는 2년째 자연스럽게 내가 제외되고 있다.
그리고 시험관 시작한지 11개월이 지났던 날 - 2차 신선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도 그 사실을 공표했다. 하필이면 팀에서 준비하는 중요한 연간 보고가 나의 신선 채취날로 잡혔던 것이다. 그 전주 금요일, 나의 컨디션이 최하로 떨어져 퇴근 시간만을 고대하고 있을 때, 우리 팀원들은 자정까지 남아 보고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가뜩이나 보고 당일 연차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동료들에게 어떻게 털어놔야 하나 머리 싸매고 있는데, 당장 택시 잡고 집에 들어가 쓰러져서 자고 싶은 나만 빼고 모두들 으쌰으쌰하며 피자를 주문하자는 분위기였다. 그날 나는 과감하게 팀워크를 포기하고 내 몸부터 챙기기로 결심했다. 일과 시험관 둘 다 챙겨보자는 욕심은 그날을 계기로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그날 혼자 정시퇴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