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일기. 시험관 시술에 있어 가장 큰 공포는 따로 있다
보통 시험관 시술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배에 주사를 놓는 장면. 2016년에 장나라가 주연으로 나온 '한 번 더 해피엔딩'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유다인이라는 배우의 역할이 시험관 시술으로 아기를 가진 엄마였다. 인물 소개에 보면 이렇게 써있다.
2년 동안 인공수정, 시험관 아기를 거친 끝에 득남했지만, 이후 그녀의 몸은 망가졌다. 인간의 기본 3대 욕구인 식욕, 수면욕, 성욕이 함께 고장 난 것.
그리고 드라마에서 해당 배우가 과거에 시험관 시술을 진행했던 시절을 회상하는데, 여지 없이 등장하는 건 배에 주사를 놓는 장면이었다. 아마도 이 주사가 시험관 시술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인데, 사실 시험관 주사는 그렇게 아프진 않다.
특히 배주사의 경우 주사 바늘 자체가 얇고, 무엇보다 뱃살을 최대한 두툼하게 접어서 주사 바늘을 찌르기 때문에, 찌르는 순간에는 거의 느낌이 없다. (쓰고 보니 내가 내 무덤을 파는 격이다. 내가 뱃살이 없고 복근이 있었다면 많이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주사 바늘로 투입되는 약물에 따라서 아무 느낌이 없을 때도,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플 때도 있는데 사실 내 기준으로는 참을만 하다.
그리고 시험관을 진행할 때쯤 되면, 어느 정도 주사에 익숙해져 있게 되는 것도 있다. 처음부터 바로 시험관에 돌입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난임 병원에서 일곱 번의 과배란 실패를 겪은 후에 시작을 했다. 2년 동안 병원을 학원처럼 드나들며 각종 피검사를 진행하다보니까, 주사는 더 이상 공포요소가 되지 않았달까. 막상 시험관을 시작했을 때, 난생 처음 배에 맞는 주사에 살짝 긴장하기는 했다만. 그걸 또 매일같이 맞다보니 사흘 째쯤부터 무덤덤해졌다.
무서운 건, 오히려 그 '무덤덤해짐'에 있다.
시험관 1차 때 나는 점심 때마다 주사를 맞기 위해 꼬박꼬박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다. 어떻게든 간호사분께 직접 맞아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험관 2차 때부터 나는 남편에게 주사에 관한 모든 역할을 위임했다. 매일 아침 출근 준비 루틴 중에 '주사 놓기'가 추가되었다.
아마도 3차 때부터였나. 왠만한 배 주사는 내가 직접 놓기 시작했다. 화장품 파우치에 주사기와 앰플, 소독솜을 챙겨두었다가, 사무실 내 화장실로 들어간다. 아무도 보지 않는 개인 칸 안으로 들어가서 주사 바늘을 소독하고, 앰플에서 주사기로 약을 투입하고, (두 손가락으로 뱃살을 두툼하게 집고), 주사를 놓는다.
그리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자리로 돌아가서 하던 업무를 계속한다.
평소에는 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주사를 놓는다.
그러다가 그런 날들이 있다. 이런게 아무렇지 않아졌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서러워지는 날이.
예를 들면 피검사를 받고 비임신이라는 결과를 확인한 날. 그런 날에는 내가 그 동안 맞았던 온갖 주사들이 다 떠오르기 마련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되다니!!!라고 생각할 때의 "이렇게까지"가 그 주사들이다. 주사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참 억울하기 짝이 없겠다. '평소에는 잘만 맞더니만 갑자기 얘가 왜이래'
그런데 있잖아. 나도 참 웃기다.
무덤덤해진다는게 서럽다니. 무덤덤해지는 건 좋은건데.
시험관 주사가 매 번 아팠으면, 매일 무서웠으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아직까지 매번 긴장하면서 주사 하나 맞으러 택시를 타고 병원에 다녀야 했다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낭비되었을까.
무덤덤해지는 건 복이다. 가까운 누군가를 잃었을 때도, 평생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졌을 때도, 내가 난임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도 나는 많이 아팠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모두 무덤덤해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버틸 수 있었다.
아이만 생긴다면야 주사는 열 개는 백 개는 거뜬히 맞을 수 있으리.
시험관 시술에 가장 큰 공포는 주사가 아니라 비임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