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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바람 Nov 01. 2019

선택할 수 없는 사람, 선택할 수 없는 삶

난임 일기. 그동안 수월하게 살아왔던 나의 삶에 감사를

사람들은 참 남 일에 관심이 많다.


아이를 하나만 낳고 산다는 부부에게는 그렇게 형제자매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둘은 있어야 외롭지가 않다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딩크에게도,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비혼주의자에게도 늘 '내가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라며 이야기를 꺼낸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자기 인생의 방식은 자기가 알아서 선택하면 되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평균인 '기혼에 자식 둘'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위 사람들의 조언 아닌 참견을 받는다. 내가 누구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삶의 모양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에 대해서는 그냥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자.


그 와중에 선택 자체를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 하나 낳아서 모든 사랑을 몰아주며 키우고 싶은 사람들. 둘 낳아서 형제자매가 사이좋게 자랐으면 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반반씩 닮은 아이를 온 마음을 다해서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사람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쉽게 아이를 갖지 못하는 난임 부부들이 그렇다. 나는 그동안 6번의 시험관 시술에 실패할 때마다 내 남은 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앞으로 살고 싶은 엄마로서의 삶이, 평생 당연하게 주어질 줄 알았던 삶에게 매 번 거절당하는 기분이다. 나도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하고 싶은데, 눈 앞에 그 선택지가 없다.


"왜 아직도 아기가 없어요?" "2세는 언제쯤 볼 계획이에요?"

"어서 아이를 낳아요. 아이는 삶의 축복이자 기쁨이에요"


좀 내버려 두세요.



아, 그러고보면 나는 참 분에 넘치게 수월한 삶을 살아왔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나는 늘 선택하는 입장에 있었다.


건강한 부모님 밑에서 편하게 자랐다. 남들과 똑같이 학교를 다니고, 필요하면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받으며 공부를 했다. 빚에 쪼들리거나 대부업자에게 쫓겨본 적 없이, 집 안에 가구마다 빨간딱지 붙어져 본 경험 없이 살았다. 공부한 만큼 성적을 받아 대학교에 입학했고, 학교와 전공, 토익점수와 외국어 점수에 적당하게 맞는 회사에 입사했다. 고시 준비를 하거나 공무원이 되겠다고 노량진 고시원에서 코피 터지며 밤낮으로 공부해본 적도 없다. 스물아홉에 첫눈에 반한 남자와 서른 살에 결혼을 했다. 둘이 벌며 매 년 꼭 한 번씩은 해외여행을 갔다. 언제든 사고 싶은 걸 다 사도 될 만큼 풍족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지만, 평생을 적당히 만족할 만큼은 살았던 것 같다.


내가 겪지 못해서 몰랐을 뿐이다. 주위에 무심했고 무책임했다.


내 몸이 아파서, 가족이 아파서, 돈이 없어서, 그래서 돈을 버느라 시간이 없어서 스스로가 선택한 삶을 살지 못하고 눈 앞에 닥친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이제는 보인다. 원하던 삶은 아닐지언정 그럼에도 버티고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제야 보이고 들린다. 내가 바랐던 건 아니었지만, 나도 이제 진짜 "삶"이라는 걸 살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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