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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Dec 30. 2020

#5. 계획에 없는 돈을 쓰는 여행

인도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맨손과 맨발로 일한다. 거리에는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한 노동과 노동자가 있다. 자전거 릭샤꾼은 한 푼의 돈을 벌기 위해 손님을 태운 채로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뜨겁게 달궈진 페달을 굴린다. 콜카타의 핸드 릭샤꾼은 두 팔로 인력거를 끌어 비좁은 자동차 사이를 쉴 새 없이 맨발로 달린다. 혹시라도 미끄러질지 모른다며 그들은 신발이나 양말도 신지 않는다. 땡볕에 시커멓게 그을린 아스팔트는 그들의 땀은 물론이고 피부까지 집어삼킬 기세로 꿈틀거린다. 상상할 수 없는 중노동의 현장이지만 그럼에도 경쟁이 치열하다. 오히려 서로 자기가 손님을 태우고 일을 하겠다며 아우성이다. 일로부터 받을 육체적 고생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하나 있다. 그들의 일은 정직하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땀을 흘리는 만큼 그대로 돈을 벌어가는 것 같다. 땀으로 번 돈은 고스란히 그 가족들과 함께 삶을 유지해갈 양분이 될 것이다.





다섯 밤을 머무른 암리차르를 떠나던 날이었다. 인도에선 ATM 출금 수수료가 비싸서 한 번 뽑을 때 최대한 뽑고, 돈이 떨어지면 또 뽑는 식으로 여행했다. 마침 그 때는 돈을 뽑은지 꽤 된 때라 이제 지갑이 거의 텅텅 빌 때가 됐다. 기차표를 예매한 뒤 내게 남은 돈은 100루피가 전부였다. 한국 돈으로 굳이 따져 본다면 당시 환율로 1600원 정도였다. 하지만 1600원이라는 건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 동네 시세가 다르니 돈의 가치도 현저히 다르므로 엄연히 ‘100루피’라고 불러줘야 옳다. 


사실 얼마 남지도 않은 그 돈을 아낄 마음이었으면 숙소에서 조금 일찍 출발해 기차역까지 걸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 그 먼 거리를 걷는 건 적잖이 피곤한 일이었다. 가는 길에 힘들어서 물값이나 밥값이 더 나갈 수도 있었다. 돈을 조금 쓰더라도 간만에 자전거 릭샤를 타기로 했다. 


배낭을 메고 숙소 밖으로 나왔을 때 밤이었다. 인적은 드물었고 듬성듬성 서 있던 노란 가로등만이 거리를 조금씩 비추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눈에 띄던 작은 빛 하나가 있었다. 저 앞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마지막 승객을 찾는 릭샤꾼의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시간이 늦어 다들 퇴근한건지 인간에 릭샤꾼은 그 사람 밖에 없었다. 마치 오늘 하루 치 장사를 다 하지 못해 아직도 퇴근하지 못 한 채 홀로 승객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급히 큰 돈을 마련해야 할 딱한 사정이라도 있던가.


한편 나로선 숙소에서부터 릭샤값 시세를 알아보고 온 참이었다. 숙소 사람들 말로는 30루피면 충분히 기차역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만약 그 이상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바가지 씌우려는 것이니 조심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딜 가건 현지 물가를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가격을 뻥튀기 시켜 받는 자영업자는 많다. 인도라도 다를 건 없고, 오히려 인도에서는 흔한 일이다. 믿을만한 사람에게 현지 시세를 알아보고 오는 건 가장 기본적인 팁이다.


물론 나는 시세를 알고 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릭샤꾼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릭샤꾼은 20루피나 불어난 50루피를 불렀다. 숙소 사람들이 말한 그 ‘바가지’였다.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늦은 밤이니 심야 할증이 붙을 수도 있는 거였고, 다른 릭샤꾼은 다 퇴근해서 내게 다른 대안은 없기도 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정했다. 인도에서의 흥정은 모든 여행자에게 당연한 일과 중 하나다. 심야할증도 있는데 기본 가격인 30루피는 나도 염치 없는 것 같아 40루피로 흥정을 시도했다. 


퇴근 막바지에 매출을 올려야 하는 아저씨도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50루피가 아니라면 차라리 나를 태우지도 않을 기세였다. 아저씨의 태도는 굉장히 단호했는데, 그렇게 완고한 인도인은 지금껏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말도 없이 단호하고 날카롭기만 한 그의 눈빛은 내게 “이 늦은 밤엔 나도 정말로 힘들다고. 네가 아무리 시세를 알아도 나는 그 정도는 받아야겠어”라고 하는 듯했다. 심지어 흥정하는 나를 세워두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있지도 않은 다른 승객을 찾는 시늉까지 했다. 평소 같았으면 보통 짠돌이 여행자가 아닌 나도 지지 않고 어떻게든 흥정을 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그날따라 고집을 피우고 싶진 않았다. 


“그럼 40루피로 깎아주기로 하신 건데, 내가 10루피는 미리 팁으로 드리는 거로 해서 50루피로 갑시다!”


나 자신도 흥정에 성공했다는 합리화가 될 수 있고, 아저씨도 원하는 대로 50루피를 받을 수 있는 평화적인 해결책이었다. 물론 인도에는 팁 문화가 없지만 그때는 그냥 특별히 그러기로 했다. 아저씨도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치긴 했지만 흔쾌히 승낙했다. 인도의 릭샤는 마차처럼 생겼는데, 바퀴 하나 달린 앞부분은 자전거 모양이지만 뒤에는 두 개의 바퀴가 있다. 그 위엔 사람 셋은 나란히 앉을 수 있는 큰 안장이 있다. 뒷자리에 오른 나는 커다랗고 무거운 배낭을 발 앞에 안정적으로 뒀다. 아저씨는 선 채로 바퀴를 굴려 추진력을 받더니 페달을 크게 밟아 릭샤를 움직였다.


내가 아저씨에게 내기로 약속한 50루피라는 돈은 굳이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800원 정도다. 800원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살던 나라에서 자판기 음료수 한 캔 값도 안 되는 돈이다. 충분히 적은 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 그 돈은 장정 한 명과 커다란 배낭을 뒤에 태우고 어둠 속에서 20분 남짓 페달을 밟아야만 받을 수 있는 돈이다. 그러니 아무리 환율로는 같은 가치라고 해도, 실질적으로 그 가치는 굉장히 다르다. 나는 늘 여기는 인도이기 때문에 50루피를 800원으로 여기지 않고 ‘50루피’라고만 여겨왔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가면 별것도 아닐 돈에 왜 그렇게 얽매이냐고 했지만, 여기 있는 동안은 여기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들은 10루피에 10분동안 흥정을 하며 전전긍긍하는데, 머무는 동안은 그와 동일해져야 함께 살 수 있었다. 그들에게 소중한 게 내게 소중했고, 내게 소중한 게 그들에게도 소중했다. 




가까운 줄 알았던 기차역은 생각보다 멀었다. 밤이 깊어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아 거리는 어두운 편이었다. 조명 하나 없는 아저씨의 자전거는 오직 달빛과 간간이 나오는 가로등 빛에만 의존해 나아갔다. 그러다 한 번은 기다란 오르막길이 나왔다. 오르막길 초입에서 아저씨는 어떻게든 낑낑대며 페달을 밟아보려 하시다가, 힘에 부쳤는지 곧 자전거에서 내렸다. 한 쪽에서 양 핸들을 잡고 두 손으로 밀고 가려고 하셨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즉각 고민할 새도 없이 배낭을 한쪽에 걸쳐 메고 내렸다. 아저씨 반대편으로 가서 한쪽 핸들을 잡고 자전거를 밀었다. 함께 오르막길을 올랐다.


우기가 한창인 썰렁한 밤이라 공기가 제법 찼다. 장정 한 명을 태운 자전거를 모느라 이 날씨에도 아저씨는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셨다. 뒤에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랬다. 아저씨는 반대편에서 같이 자전거를 미는 나를 보시곤 말없이 씩 웃어 보셨다. 처음 만났을 땐 한사코 까칠하기만 하더니.


제법 길었던 오르막길을 다 오르니 다시 평지가 나왔다. 함께 자전거를 밀며 ‘이거 생각보다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어서 그런지, 다시 뒤에 가서 앉기가 어딘가 미안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손님이 되길 거부하는 건 이 아저씨의 숭고한 일을 무시하는 것도 같았다. 여기서 내가 아저씨에게 미안해진다면 아저씨가 뭐가 되겠는가. 손님으로서의 본분에 다시 충실하기 위해 배낭을 들쳐 메고 다시 자리에 가 앉았다. 아저씨도 안장에 올라 다시 페달을 밟으셨다. 그 이후론 계속 내리막길이나 평지였다. 도착할 때까지 다시 내릴 일은 더 없었다. 그리하여 기차역까지 남은 시간 동안 내가 보았던 건 어둠 속에서 쉼 없이 땀을 닦아내던 아저씨의 뒷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니 가슴 어딘가가 시큰해졌다. 아무리 숭고한 일이며 돈으로 얽혀진 관계라 해도 오직 나를 위해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기차역에는 얼마지 않아 도착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오르막길에서 같이 자전거를 밀어준 내가 내심 고마우셨던 것 같다. 원래 성격이 무뚝뚝하셨던 건지, 말로써 고맙다는 말은 안 하셨다. 다만 그 목소리는 처음과 달리 아주 부드럽고 투명해져 있었다. 기차역 초입에는 다른 릭샤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거기가 릭샤 정류장인 것 같았다. 그런데 아저씨의 릭샤는 거기서 서지 않고 펜스를 넘어가 역 안을 향해 끝까지 갔다. 심지어 내게 어디로 가는 기차냐고 물으시더니, 괜찮다는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역 주변을 빙빙 도셨다. 기어이 내가 타야 할 플랫폼 가장 가까운 곳까지 데려다주기 위함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다시 들쳐 메고 릭샤에서 내렸다. 때묻은 지갑을 열어 100루피짜리 지폐를 한 장 꺼내어 아저씨에게 드렸다. 당시 내 전재산이었고 이제 지갑은 텅텅 비었다. 어차피 델리에 도착해 바로 돈을 뽑을 거니 상관 없었다. 100루피를 건네받은 아저씨는 품에서 꼬깃꼬깃 접힌 10루피짜리 지폐 다섯 장을 꺼내셨다. 천쪼가리를 대충 바느질한 아저씨의 바지에는 주머니도 하나 없어서 허리춤 한쪽을 똘똘 말아 임시 주머니를 만들어 쓰고 계셨다. 아저씨는 잔돈을 한 장 한 장 빳빳하게 펴가며 정성스럽게 세셨다. 


“텐, 텐튀, 써띠, 포띠, 삐쁘띠.”


어떤 순수한 사람이, 정성을 다해 거스름돈을 세며 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평생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따뜻했다.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어떻게든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너무 감동스러워서 옷을 입지 않아도 온 몸이 따뜻했다.


어찌 되었든, 이제 내 전재산은 이 50루피였다. 여기는 인도니 800원이 아닌 엄연한 50루피였다. 인도에서 나는 이 돈으로 인도 전통 음료인 짜이를 다섯 번이나 마실 수 있고, 이 정도 거리의 릭샤는 한 번 더 탈 수도 있다. 더욱이 델리에 도착해서는 기차역에서 시내까지 갈 차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굳이 평소와 다르게 생각했다. 이 돈은 ‘50루피’가 아니라 ‘800원’이라고. 다선 잔의 짜이 값이 아니라 한국 자판기 음료수 한 캔 값이라고. 만약 지금 이 돈이 원래 없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어차피 언젠가 돌아갈 한국에서 음료수 한 캔 안 먹으면 될 돈이라고 생각했다. 


잔돈으로 받은 지폐 중 30루피를 아저씨에게 돌려드렸다. 나도 내 마음을 최선을 다해 전해드리기 위해, “텐, 텐튀, 써티” 하고 정성스레 돈을 세어 드렸다. 20루피는 기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쓸 혹시 모를 비상금이기에 차마 드리지 못 했다. 30루피는 우리 돈으로 500원 남짓이었다.


보통 이렇게 주어지는 돈을 세상은 ‘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내가 아저씨께 드린 돈은 팁은 아니었다. ‘팁’이라고 말하면 왠지 돈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정해지는 것 같아 싫었다. 그건 오로지 나를 위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자전거를 끌어준, 아저씨에 대한 내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었다. 다만 그 짧은 순간에 아저씨와 내가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게 돈이 전부였을 뿐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아저씨가 이 돈을 ‘팁’이라고 오해하실까 짐짓 걱정됐다. 내 마음의 따뜻함을 최대한 끌어내어, 이미 햇빛에 오랫동안 그을려 검게 변해버린 아저씨의 손에 30루피를 두 손으로 꼭 쥐어드렸다. 


“이것밖에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하며 나는 두 손으로 자전거를 끌던 아저씨의 손을 잡아 그들이 신에게 인사하듯 내 이마에 그 손을 갖다 대어 존경의 인사를 해드렸다. 볼 일 끝난 나는 이만 몸을 돌려 플랫폼을 향해 걸어갔다. 아저씨는 멍한 표정을 짓고는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다. 아니, 아저씨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얼른 도망가버린 거였다. 저만치 멀어진 뒤에 고개를 돌렸을 때 아저씨는 아직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멍하니 서 

계셨다


그 날 탔던 먼지 가득한 야간 취침 기차에서 나는 내 생에 가장 달콤하고 편안하게 잤다. 아침에 일어났을 땐 차 장수가 기차 복도를 지나가며 차를 팔았다. 20루피 중 10루피를 내고 한 잔 샀다. 창밖에는 인도의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고 저 끝에는 하루를 알리는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딱 떠오르는 태양만큼 따뜻했던 차는 향긋하고 달콤했다. 결코 한국에서 160원으로는 누리지 못할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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