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뒤꿈치

by mori

다소 쌀쌀한 출근길 아침이다. 해가 높이 솟고 이리저리 시끄럽고 복잡한 하루의 중반이 되면 하나둘 재킷을 벗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승객들의 옷도 모두 두께가 제각기 다양하다.

6614 기에 모인 사람들만으로도 가을부터 봄까지 홈쇼핑 컬렉션을 위한 모델 동원이 가능할 정도이다. 나 또한 반팔에 어정쩡한 패딩을 걸치고 나온 터라 점심 이후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스쳤다.

땀을 흘리며 거위털 패딩을 입고 있는 모습은 미련해 보인다. 그렇다고 반팔로 계절을 앞서가는 멋쟁이로 보이긴 좀 부담스러운데, 물끄러미 버스 뒷바퀴 위에 앉아 고개 숙인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하고 있었다. 정차할 때마다 하나둘 비었던 의자가 채워진다.

하얀 뒤꿈치

대각선 건너편 자리에 지금 막 앉은 발이 하얗게 빛났다. 베이지 버버리 코트에 어깨를 살짝 덮은 브라운 컬러의 머리카락은 빈약한 버스의 조명 아래서도 윤기가 흘렀다. 무릎에 놓인 도톰한 잠수복 재질의 검은 파우치는 인조가죽의 핸드백보다 잘 어울린다.


그런데 복숭아뼈 시작 지점에서 끝난 검은 바지의 아랫단, 그 밑으로 매끈하고 하얀 아킬레스의 힘줄이 뒤꿈치를 지나 종골융기까지 가냘프게 이어면서 발바닥지 막힘 없다. 옅은 분홍의 발바닥에서 하얀 뒤꿈치, 발목까지 훤이 들여다 보였다. 자석을 떼어내듯 시선을 옮기는데 저항이 느껴진다.

사무실 어느 한구석에서 우리가 마주쳤다면 이것은 분명 시선을 끄는 어색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해가 확고하게 뜨지 않은 이 시간의 쌀쌀함과 슬리퍼 위로 드러난 맨살은 분명 어울리지 않는 구성이었다. 더욱이 투명하리만치 맑은 피부와 주변을 감싸 도는 절제된 선은 인간 발목의 원형을 상상하게 했다. 찬바람의 날카로움이 닿기 전에 덮어주고 싶은, 안쓰러움이라기보다는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하얗고 매끈한 뒤꿈치를 본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물어보며 머릿속을 뒤적여 보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 어떤 인연 속에도 없다. 저런 뒤꿈치가 존재하려면 아마도 아기 때부터 구름만 걸어 다녀서 땅을 한 번도 딛지 않았으리라.


신데렐라를 찾는 왕자의 심정으로 그녀 앞에서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한쪽 무릎을 꿇고는 경건한 움직임으로 발을 들어 올린다. 슬리퍼에서 발을 천천히 빼고는 발바닥을 보고 싶다. 뒤꿈치가 이렇게 아름다운 바닥은 어떨까. 굳은살이 있을까.




아! 이제 내릴 때가 되었다.


험한 세상 오늘 하루 하얀 뒤꿈치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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