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솜 Jul 14. 2022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대체로 비건의 시작

사회 선생님의 권유로 SBS 다큐멘터리 <가디언스 오브 툰드라>를 보던 아이가 원주민들의 고래 사냥 장면을 지켜보며 말했다.


"우리가 윌리를 키우면서, 순전히 잡아먹기 위해 개를 가둬두고 키우는 사람들을 보고는 비윤리적이라고 하는데요, 그게 소나 돼지를 키워 그 고기를 먹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그러더니 그 길로 바로 비건 선언을 했다.


사실 아이는 채소를 즐겨먹지 않는다. 이건 부엉이 친구 우엉이야, 해야 겨우 우엉 1cm를 먹었고, 이걸 먹으면 손이 따뜻해져서 겨울에 눈싸움을 할 수 있어, 해야 부추 두 가닥을 먹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먹던 거니까 분명히 좋아하게 될 거야, 하고 응원해서 시금치를 먹기 시작했고, 사촌 형아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베스트 3에 드는 것이라고 꼬드겨서야 짧은 파채를 골라 먹게 되었다. 반면 고기는 그야말로 삼시 세 끼다. 고기든 햄이든 '먹을만한 반찬'이 있어야 밥을 먹었고, 마땅한 찬거리가 없을 때에는 한 달에도 여러 번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다. 그러는 사이 나 역시 아이의 메뉴에 따라 고기 의존도가 점점 높아져갔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비건 선언을 했을 때, 나는 그게 며칠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3년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기후변화 수업을 듣고 환경적 측면에서 먹을거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지금과는 시작의 계기가 달랐지만, 아무튼 한 달간 라면을 먹지 않아 팜유 소비를 줄이는 것 정도의 성과를 내고 그만두었었다. 게다가 고기가 아니고서는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말 그대로 없지 않은가 말이다. 갑자기 너무 먹을 게 없어질 것을 염려하여 나는 블로그 이웃 현주님이 그녀의 아들에게 제안했던 것처럼, 학교 급식은 그냥 먹을 것, 동물복지를 우선하여 구입할 테니 달걀도 먹을 것을 제안했다. 더불어 해산물과 유제품도.


아이의 결정에 나도 동참하기로 했다. 시작은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남편은 우리에게 장어를 구워주고, 자신은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고기를 대체할 음식을 찾는데 정성을 기울였고, 집안은 매일같이 생선 비린내로 가득했다. 그리고 아이가 젓가락을 대볼만한 채소 반찬을 하나씩 식탁에 올리기 시작했다. 일단 접근이 쉬운 시금치나물과 콩나물 무침, 무를 넣은 생선 조림, 그다음엔 매실 장아찌... 약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우리 집은 두부를 구입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처음으로 무 한 개를 남겨 버리지 않는 일이 생겨났다. 비비고 교자만두가 들어있던 냉동실 서랍에는 이제 비건용 100% 채식 만두가 들어있고, 치킨 텐더 대신 두부 텐더가, 돈가스 대신 생선가스가 자리 잡게 되었다. 배달 음식도 달라졌다. 나는 물냉면 대신 코다리냉면을 사 먹었고, 모리는 불고기 버거와 모차렐라 인 더 버거 대신 피시 버거와 새우 버거를 주문했다. 피자는 단일 메뉴 할인의 유혹을 이기고 하프 앤 하프로 주문하여 페퍼로니 반, 머쉬룸 반으로 시켰다.


물론 이에 대해 걱정인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남편과 우리 엄마가 그렇다. 남편은 자신의 식생활에도 어쩔 수 없이 스며드는 채식의 기운이 못마땅하고 아이의 군생활과 사회생활에서의 불편이 염려된다고 했다. 반면 우리 엄마는 아직 어린아이의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까 봐 결사반대하고 있다. 나의 언니들은 모리(아이의 이름)는 몰라도 너는 절대 못할 거라며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고, 내 직장 동료와 마찬가지인 옆 학원 피아노 선생님은 아이 몰래 우리끼리 삼겹살 먹으러 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왔다. 또 수학 학원 선생님은 나와 아이에게 최근 생긴 알레르기가 고기를 끊었기 때문에 일어난 반응이 아니겠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저녁으로 무가 들어간 어묵탕과 두부부침과 도토리묵무침을 먹으며 아이는 학교 급식에 나온 돈가스는 먹지 않고 함께 나온 김치 국수와 유기농 초코파이를 먹었다고 말했다. 급식은 고기 빼면 반찬이 너무 없으니 그냥 먹기로 했잖아, 하고 물었더니 건강에도 좋지 않은 것을 먹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 광경을 보고 친구가 "초코파이가 고기보다 더 몸에 나쁜 거 아니야?"하고 의아해했단다. 남편은 한숨을 쉬었고, 나는 속으로 '요 녀석 좀 보게나?'하고 웃음이 났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이와 마주 앉아 누룽밥에 구운 김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 네가 채식을 하는 것을 누군가는 편견을 가지고 상처를 줄 수 있어. 반대로 다른 사람이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고 네가 기분이 상할 수도 있어. 그러나 그건 결국 각자의 선택이야. 그건 그냥 존중하자. 절대 잊지 마.

그리고 이건 엄마로서 그래도 조금은 걱정이 되어 하는 이야기인데, 네가 오늘부터 <아무튼 비건>을 읽기 시작하면 당장에 해산물과 달걀, 유제품도 먹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중요한 건 횟수의 문제이지, 당장에 100에서 0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거든. 엄마는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그것들은 먹었으면 좋겠어."


"일종의 종교 같은 거네요."


아이는 알겠다며 앞에 놓인 접시에서 달걀프라이를 숟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어쩌면 이번 겨울, 나는 아이에게 입힐 겨울 잠바를 사면서 거위털이 들어 있는지 안 들어 있는지, 모자에 달린 털은 라쿤 털인지 여우 털인지를 따지느라 고생깨나 할지도 모르겠다. 다음 운동화를 살 때에는 천연 가죽이 아닌 합성피혁을 찾아 라벨을 들춰봐야 할지도 모른다. 비건의 입장에서 보자면 완전히 비과학적인 논리로 중무장한 남편의 불만을 적절히 희석해야 하는 것도 내 몫일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것을 결정하기를 주저하는 아이인 만큼, 그런 아이가 굳게 먹은 마음인 만큼, 나는 함께 할 것이다. 지지하고 박수를 보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저 갈비찜이 먹고 싶어요." 하면 별말 없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갈비찜을 만들어줄 것이다.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어진 아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이것이 내가 하는 '비건'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