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무얼 먹냐 하면요..
고기를 먹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두 달.
그간의 식생활을 기록해 본다.
1.
먼저 외식.
4월 초, 아이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나는 그 뜻에 동참하기로 하였고 남편은 그런 우리를 반대하고 나섰다. 내가 동참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언젠가 나도 비건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미루던 일을 실천할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혹시라도 살이 조금 빠지는 효과도 덩달아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으며, 마지막은 가족 중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줄 때 아이의 실행 의지가 조금 더 길게 유지될 수 있을 거라는, 결국 모성애 때문이었다. 남편이 반대한 데에도 역시 세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째는 아직 만 열두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성장에 지장을 줄지 모른다는 걱정이었고, 둘 째는 군대와 사회에서의 생활에 큰 불편이 생길 것이 확실하다는 염려였으며, 마지막 세 번 째는 자신은 고기를 먹고 싶은데 아이와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면 식구가 다 함께 같은 밥을 먹을 수 없다는 '단란한 식탁의 해체'에 대한 슬픔 때문이었는데,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어보면 결국에는 '이러다가 나만 빼고 식구들이 정말로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라는 걱정으로 귀결됐다.
나는 남편에게 '동참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는 없다, 당신이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고 우리의 표정이 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당신에게 고기를 먹지 말라 말하지 않는 것처럼 당신도 우리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하지는 말아라.'라고 말했다. 남편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후 첫 외식은 어버이날이었다. 아마 다른 때 같았다면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꽃등심 스테이크와 베이컨이 들어간 파스타와 튀긴 닭고기를 곁들인 샐러드를 먹었겠지만 우리는 보리밥집과 일식집과 중국집 앞을 서성였다. 그러나 다진 고기가 들어 있어 짜장면을 포기해야 했고 보리밥집을 가기에는 아직 아이의 채소 편식이 심한 것이 걸림돌이 되었다.
"차라리 푸드코트에 가자."
결국 남편은 돈가스를, 나와 아이는 채소튀김 덮밥을 시켜 한 테이블에 모여 점심을 먹었다. 메뉴를 고르기까지 한참이 걸린 터라 이게 다 그놈의 채식 때문이라고 짜증이 나지는 않았을까 나는 남편의 눈치를 살폈지만, 남편은 "한 번 먹어볼래? 튀김옷 때문에 고기 잘 안 보이는데." 물어본 것 외에는 별다른 말 없이 고기를 썰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외식은 별 탈 없이 끝났다. 이후 아이와 나 둘이서만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들른 식당에서는 봉골레 파스타와 새우 로제 파스타를 시켜 먹었고, 나 혼자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는 고기가 없는 돌솥비빔밥을 먹거나 새우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아직 남편과 나 둘이서 외식을 할 일은 없었는데,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리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보다는 채소를 골고루 잘 먹는 편이고, 매워서 아이는 좋아하지 않는 낙지볶음도 나중에 화장실을 들락거릴지언정 나는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다음은 아이의 급식.
된장을 먹지 않는 엄마와 오이를 못 먹는 아빠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된장과 오이를 둘 다 먹지 않는다. 엄밀히, 된장찌개는 억지로 먹을 수는 있지만 스스로 된장국을 먹는 적은 없고, 오이는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한다. 그렇다고 다른 채소나 고추장을 잘 먹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눈치를 주어야만 국을 떠먹고 잔소리를 들어야만 제일 짧아 보이는 시금치를 골라 먹는 수준이다. 그 정도로 편식이 심한 아이의 밥상에서 육류를 제외하면... 정말로 먹을 게 없다. 오늘도 급식 시간에 맨밥만 먹었다던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급식만큼은 고기가 나와도 그냥 먹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고 '맨밥만' 까지는 아니지만 '된장국에 말은 밥'만 먹고 오는 날이 일주일에 한두 번 씩 생기기 시작했다. 채소쌈에 수육, 오이 더덕무침, 된장국이 나온 날엔 된장국만 먹었고, 삼계탕에 쑥갓나물, 가자미 구이가 나온 날엔 가자미구이만 먹었다. 치킨커틀릿을 피해 탕국에 밥을 말아먹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두부를 넣은 고깃국이었던 바람에 속상해한 적도 있다.
한창 성장기에 있기도 하고 또 점심시간에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기도 하므로 당연히 아이는 거의 매일 배가 고픈 채로 하교를 한다. 그런 아이를 위해 출근 전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을 사놓는다. 스팸 마요 탈락, 닭갈비 탈락, 전주비빔밥 탈락, 소불고기 탈락, 제육 탈락, 치킨마요 탈락... 그러다 보면 남는 것은 늘 참치마요뿐이다. 계란과 참치도 먹지 않기로 했더라면 이것도 아마 제외해야 했을 텐데, 그럼 참 쉽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계산을 마친다. 오늘은 임연수 구이 한 가지랑 밥을 먹게 될 것이었으므로 유부초밥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놓고 출근을 했다.
3.
다음은 집밥에 대한 이야기다.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고 하여 그 대신 탄수화물만 많이 먹는 이른바 정크 비건이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처음엔 고기의 빈자리를 달걀로 채웠다. 생전 처음 끝자리가 1인 달걀을 구입했고, 그 달걀을 부쳐 간장을 넣고 밥을 비벼 김치찌개에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들, 우리 이럴 수는 없지 않아?"
"맞아요. 정크 비건이 될 수는 없어요."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채소 반찬을 점차 늘리기 위해 매일 새로운 반찬을 하나씩 식탁에 올렸다. 어제 만들어 놓은 시금치나물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더덕무침을 추가하고, 그다음 날에는 평소 잘 먹지 않는 가지에 전분물을 입혀 튀긴 가지 탕수육을 더했다. 소고기를 넣지 않고 새송이 버섯만 간장에 조려 장조림을 만들고, 돼지고기를 넣지 않은 잡채를 만들어 먹이고, 파프리카를 고추기름에 볶아 만든 고추잡채에 꽃빵을 먹어보게도 했다.
매실장아찌처럼 그냥 한 번 먹어볼 수는 있지만 두 번 먹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는 반찬은 양반이다. 입맛에 잘 맞지 않아 구역질을 하는 때가 있기도 했고, 불편한 속을 참고 저녁을 먹다 체해서 토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먹을만하다고 두어 번 더 집어 먹는 때가 더 많았고, 드물지만 가지 탕수육처럼 정말 맛있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경우도 있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에 제한이 생기자 퇴근길에 반찬 가게에 들르는 날은 몇 번 생겼을지언정 밀키트 가게에 들르는 날은 없어졌다. 부끄럽게도 그 전에는 카드 사용 내역서의 절반을 차지하던 배달음식 결제 건이 반의 반의 반으로 줄어들었다. 냉장고에는 당장이라도 밥을 차려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이 적어도 세 가지쯤은 들어 있게 되었고, 온라인 마트의 자주 구매하는 식품 목록에서는 비엔나 소시지가 빠지게 되었다.
4.
마지막은 남편의 이야기이다.
남편이 만들어 주는 음식은 대부분 고기 요리이다. 고기를 굽거나, 고기를 볶거나, 고기를 끓이는 것들로, 그중에는 소고기 전골도 있다. 그런 남편의 퇴근길 장바구니에 갖가지 버섯이 담기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마트에 가서 보니까, 세상에, 버섯의 종류가 엄청 많더라고!"
신이 난 남편이 만들어 준 것은 버섯전골. 알배기 배추와 청경채, 쑥갓과 각종 버섯을 끓인 국물에 우리는 칼국수까지 넣어 싹싹 건져 먹었을 뿐 아니라 종류별로 다른 식감을 즐기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버섯을 찾아보는 재미까지 더해져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저녁이 되었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남편이 말했다.
"채식하니까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아. 일단 우리가 배달 음식을 줄여서 건강에 좋을 것 같고... 무엇보다 아이가 여러 가지 채소를 먹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은 것 같아."
그랬다. 남편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