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장면에 오래 머무르는 나

나는 나를 좋아하는가?

by 모리화


'나는 내가 좋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는 글짓기 미션이 있었다.


이상하게 시작이 쉽지 않았다.

마치 나 자신을 싫어했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머뭇거렸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쭉 나열해 볼까? 하는 생각이

곧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으로 옮겨갔다.


그러다 예전에 짧게 메모까지 남기며

내가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지, 궁금해했던 일이 생각났다.




8년 전, 어느 공원에서

초록색 담쟁이로 몸통이 거의 가려진 소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그동안 영화나 그림 속에서 보던 담쟁이는 항상 멋진 풍경의 주인공이었다.

그림이나 시 속에서도 항상 예뻐 보였고 그래서 난 담쟁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실제로 본 담쟁이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위에선 “멋지다”, “신기하다”는 감탄사와 함께

연신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일단 사진을 찍었지만,

감동해서 찍었다기보다

막연히 담쟁이는 이쁜 거라고 믿었던 내 마음이

이렇게 불편해진 이유를 찾고 싶어서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몇 개의 사진과 정보를 더 찾아보았다.

여전히 바위 위에, 돌담 위에 담쟁이 사진은 여전히 에뻐 보였지만

내가 찍어 온 사진을 보자 다시 불편해졌다.

마치 내 몸을 기분 나쁘게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예뻐 보인 거지 예쁜 놈이 아니었다.


더구나 소나무의 진을 빨아먹은 이 식물이

‘약’으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더 심통이 났다.

그래서 그날, 카톡 프사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휘감듯 오르는 담쟁이 저야 신날 테지만

저 소나무는 얼마나 근질거릴까?

속도 모르고 보기 좋다느니, 몸에 좋다느니…”



60자 제한에 맞추느라 줄이고 또 줄였지만,

그래도 삐졌던 마음이 조금 해소되는 듯했다




이렇게 짧게 남겨 두었던 글을

8년 만에 다시 찾아보게 된 일이 있었다. 마치 데자뷔 같은.


최근에 지방의 낯선 거리에서 버스 정류장을 찾고 있었다.

오른쪽 시야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소나무 한 그루가 내 눈길을 확 끌었다.


미치도록 예쁜 하늘을 배경으로

담쟁이 이파리가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하늘과 구름,

내가 자연에서 제일 좋아하는 바람까지

유난히 예뻐 보이는 장면이었다.


순간, 8년 전 그 공원에서

“넌 이거 안 멋있어?.” 라며 굉장히 의아한 얼굴을 했던 친구가 생각났다.

그게 뭐 별거라고 우물쭈물거렸으니, 나이 값도 못한 기분이었다.

난 그때 내가 별난 사람일까 봐 아주 잠깐 괴롭기도 했었다.


그래, 다시 한번 사진을 찍어보자.

나는 멈춰 서서 영상을 찍으며, 묘하게 기대했다.

혹시나 이번엔 다르게 느껴질까?

아니었다.


여전히 불편한 감정이 솟아났다.

10년 넘게 꽃 일도 오래 한 사람이,

그냥 자연의 이치라고 한 마디면 뭉갤 수 있는 걸 가지고

오히려 더 진지해져 버렸다.


그 담쟁이가 소나무의 진을 가져가는 대신

바람을 막아주고,

햇볕을 가려주고,

비를 대신 맞아줬다고 해서 소나무가 고마워했을까?

아니? 아니었을 거다.


그럼 겨울엔?

마찬가지, 사계절의 바람 모두 정면으로 맞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매서운 추위 가운데 세찬 눈보라도

맨몸으로 맞고 싶었을 거다.

나라면.


불편한 감정은

이제야 비로소 이유를 찾은 듯했다.


한 편으론 속 시원해하면서도 또 의문을 품었었다.

내가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는 건 아닐까? 하고....


꽃 일을 하다 보면 가위에 손이 베이기도 하고,

갑자기 멍이 들거나, 걸려 넘어질 때도 있다.

그러려니 대충 얼른 넘어가는 편이다.

살아온 동안 부침도 많아서 웬만한 건 놀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떤 장면 앞에서는 멈춰 서서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고 이렇게 오래 머물러 있는 나를 궁금해했었다..

친구가 보내던 그 의아해하던 눈길에 만감이 교차하며

내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질문과 답의 중간쯤에서 멈춰있었던 나였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가끔 내가 별난 사람 인가 하는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이번에 알았다.

불편함의 이유를 끝까지 찾아가는 나,

그게 곧 나를 더 잘 이해하는 방법이었다는 걸.


혹시나 지나친 감정이입일까 고민했던 마음은,

나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였고

그렇게 사소한 장면에 오래 머물러 본 순간들이,

결국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냥 이렇게 말해보려 한다.

나는 오늘도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굳이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그래서 싫다 좋다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직은, 나를 다 알지 못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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