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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May 05. 2018

면접보고 온 날

이번에도 안녕 

 면접 날 아침 눈에 렌즈가 잘 안 들어갔다. 그 순간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여성에게 안경이 허용되지 않는 차별만 아니었어도 편하게 안경 꼈을 텐데!!!'
'아이씨, 그냥 안경 끼고 갈까. 얼마 전 한 여자 아나운서도 안경 쓰고 뉴스에 나왔잖아'
'아니야. 내 안경은  너무 두껍고 세련되지 않았는 걸. 그분은 안경을 써도 이쁘셨으니까 가능했지'

  나에게는 불합격을 감수하면서 사회의 편견에 맞설 용기가 없었다. 결국 눈의 통증을 참으며 렌즈를 넣었다. 면접 예상 질문지를 챙기고, 정장을 입고, 낮은 굽의 구두를 신고, 나는 면접장으로 향했다. 


1층에 들어가니 임직원 카드키로 출입 가능한 게이트와 엘리베이터 그리고 맨 왼쪽에 계단이 보였다. 나는 안내 데스크에 '면접 보러 왔는데요'라고 묻는 것보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 것을 택했다. 3층까지 계단으로 올랐는데, 계단 출입문으로 들어가려면 임직원 카드가 필요했다. 나는 다시 내려와서 안내데스크로 갔다.


면접 보러 왔는데요 


'네 이쪽으로 가세요'라고 임직원 게이트를 가리키셨고, 그 앞에 서있던 경비분이 '면접 보러 왔어요?' 하면서 문을 열어주셨다.  나는 연신 '감사합니다'를 중얼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3층에 올라 면접 대기실에 들어갔다. 대기실 안의 사람들은 나를 비롯해 모두 비슷해 보였다.  개성을 버리고 '단정함'을 최대한 강조한 정장 옷차림들. 긴장한 얼굴. 대기실에 누군가가 들어올 때마다 힐끔 쳐다보는 눈빛들물론 안경을 쓴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군가 움직일 때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조용한 대기실에 울려 퍼졌다. 


 면접인원을 7 배수 정도로 뽑은 것 같았다. 7대 1인 거구나. 막막해졌다. 여자가 남자 인원에 비해 2배 정도 많았다. 설마 최종 합격자에 남자가 더 많은 건 아니겠지? 정규직도 아니고 '인턴'이면 다들 경력 없는 건 비슷할 테니까.  근데 이 직종이 남자를 더 선호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긴 한데....... 


 면접이 시작되었다. 순서에 맞춰 담당자가 이름을 호명하면 면접실로 혼자 입장했다. 나는 중간 순번이 이었다. 누군가 호명되어서 나가고, 면접 끝난 사람이 짐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면접을 마치고 어두운 표정의 지원자를 보면 더욱 긴장되었다.  어느 순간 내 이름이 불려졌다. 지난 나의 실패한 면접들을 상기하며, 그때처럼 후회할 짓은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며 면접실에 들어갔다. 


 면접에서는 내가 열심히 준비한 1분 자기소개를 시키지 않았다. 내가 준비한 단어들은 모두 쓸모 없었다. 간절함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외웠던 문장들은 다 흩어졌고 나는 예상치 못한 질문들에 속수무책이었다. 질문들은 날카로웠고, 나는 질문에 답할수록 '내가 이 업무를 맡기에 부족한 사람이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어두운 표정으로 면접실을 나와, 대기실에서 짐을 챙겨 나왔다. 그냥 부끄러웠다. 


 자꾸 면접 장면이 머릿속에 되감아졌다. 그때 그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준비한 멘트를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왜 면접 질문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걸까. '왜'라는 한심함과 '-했을 텐데'라는 미련이 내 모든 것을 휘감았다. 동시에 화가 났다. 나는 이 업무를 해본 적이 없고 이건 '인턴'면접인데, 잘 모르게 당연한 거 아닐까? 간절하게 배우겠다는 의지만으로는 부족한 거야? 


그냥 준비가 덜 된 거고, 절박하지 않았던 거야


그럼. 모든 건 내 탓이지. 답은 너무 명확해서 잔인했다. 언제까지 이 긴장과 실망을 반복해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나는 견딜 수 있을까. 그 잔인함을 견딜 만큼 나는 이 직업이 하고 싶은 걸까.  


그나저나, 여전히 조금의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내가 참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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