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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Jul 03. 2018

페미니즘에 정답은 없다

 

1.  


아빠는 종갓집 장남인데 딸만 둘이다. 만약 첫째인 내가 남자였으면 가문을 이어받았겠지만, 나는 제사상에 절을 해서도 안 되는 딸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기 1년 전 아빠의 남동생이 (작은 아빠) 아빠보다 먼저 아들(사촌오빠)을 낳았는데, 내가 태어난 후 친가에서는 사촌 오빠를 아빠 호적으로 넣는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물론 엄마가 이야기를 듣자마자 절대 안 된다고 외쳐 없던 일이 되었지만.


사촌 오빠는 ‘정상적 장남’이 되지 못했지만 남자만 참여 가능했던 종친회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가난한 집안이라 참석해봤자 별 이득도 없을 텐데,  사촌 오빠는 늘 남자 어른들만 모인 그 방에 기웃거리며 결국 한 자리 얻어내곤 했다. 남자 어른들 사이 앉아 내가 갖다 준 과일을 먹으며 자뭇 심각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암담했다. 적어도 우리 세대에는 이 모든 걸 끊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는 아니었구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학생 때 나는 사촌 오빠를 많이 의식했던 것 같다. 아빠가 친척들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딸이 되어야 한다는, 적어도 사촌 오빠보다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늘 내면에 표류했다. 학창 시절 내 성적은 상위권이었는데 그건 공부가 재밌어서 또는 꿈을 이루고 싶어서 한 노력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인정받기 위해 공부했다.


2. 


일했던 곳에서 프로젝트 진행 관련해서 정해야 할 안건이 있었고 상사가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현장을 방문했던 나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전달하며 절충안을 제시했는데 상사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왜 모릴씨는 다른 사람의 의견만 이야기해요? 저는 모릴씨의 의견이 궁금한데요."


나는 정말 당황해서, 그 순간 "제 의견이 중요한가요?"라고 물을 뻔했지만 정신줄 붙잡고 간신히 참았다.  어찌해서 그 순간을 모면하고 자리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 절충안은 고위 간부의 취향과 현실성을 적절히 섞은 내용이었고 나는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눈치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방향에 대회 회의적이었고 분명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 나는 신뢰하는 상사 앞에서 조차 말하지 못했을까. 나 자신에게 솔직해 지자 답이 나왔다.  나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 의견보다는 정답을 이야기해서 상사의 신임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3. 


나는 자주 정답을 말하고 싶어 했고 정답 같은 삶을 살고자 애를 썼다.  내 생활기록부 담임 평가란에는  "다른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며 선생님을 잘 돕는 학생"이라는 문장이 가장 많이 적혀있다.  모범적이며 착하고 선생님들에게 이쁨 받는 학생. 나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선생님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학생이었다. 질문을 할 때도 내가 궁금한 것보다 선생님이 좋아할 질문을 던졌다. 


심지어 페미니즘을 처음 배울 때도 나는 정답에 집착했다. 페미니즘은 보편성과 일반화를 거부하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학문임에도, 나는 한 가지의 정답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그때 내가 찾은 방법은 대학 교수님들이 말하는 페미니즘을 신뢰하는 것이었는데, 대학 교수 정도면 오래 공부하셨을 테니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나중에는 내 일상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한 가지 답에 집착했던 내가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어려웠던 지점은 "유연성"이었다. 나는 여성이지만 한국 중심부에 거주하며 어느 정도 사회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나는 여성이라는 약자인 동시에 이 사회의 주류이기도 한 것이다.  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모두 다르다. 동양인 나와 서양인 여성의 삶은 매우 다르며, 비장애인인 나와 장애인 여성이 경험하는 사회는 분명 다르다. 이토록 다른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이라는 일반화를 통해 차별받거나 위협받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여성뿐만이 아닌 남성, 그리고 다른 성 또한 마찬가지다. 


주변의 멋진 페미니스트 분들을 보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그 어떤 사람도 같은 삶을 살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 모두 각자의 페미니즘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사회에 살다 보면 자기 삶에서 최선을 다 하다가 어쩔 수 없이 페미니즘을 마주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이 온다면 같은 어려움을 공유하는 사람을 만나고, 같이 변화를 모색하면 된다. 


페미니즘에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다는 게 나에게는 너무나 어렵지만!) 자신을 자신답게 만들지 못하는 차별에 저항한다면, 그리고 그 저항의 끝이 "모두의 공존'이라면 이미 멋진 페미니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정의 내릴 수 있는 삶. 그것이 페미니스트들이 꿈꾸는 삶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그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여기에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이전과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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