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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Nov 23. 2018

이토록 다른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6

 수업시간에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기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을 연사로 모셨다. 한 명은 시리아에서 덴마크로 온 23세 난민 남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 친구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며 그 친구가 덴마크 사회에 자리 잡는데 도움을 준 65세 덴마크 여성이었다. 그들은 서로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 각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야기했다. 시리아에서 국가대표 운동선수였던  시리아에 계속 산다는 것은 자살 혹은 타살을 기다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민으로서의 삶을 결심했다고 한다. 부모님에게 1000만 원이라는 돈을 빌려서 불법으로 보트를 타고,  이탈리아에 도착해 계속 차를 타고 이동해 덴마크에 도착했을 때 그는 20살 다운 표정을 전혀 가지지 못했다고 한다. 


 강연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는 현재 아파트에서 여자 친구와 함께 살며 물리치료학을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예를 들어  "덴마크에서 인종차별을 자주 당하나요? "라는 질문에 "인종차별은 어디서든지 일어나죠"라는 그의 답변이 그랬고, "덴마크에 와서도 운동을 계속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트레이닝을 하고, 덴마크어를 배우고, 일까지 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저는 어느 것 하나를 희생해야 했어요"라는 답변에는 내가 속상했다. 동시에 내 눈길은 자꾸 시리아 청년 옆에서 인자한 웃는 얼굴로 앉아있던 덴마크 여성에게 향했다. 그녀는 인자하고 편안해 보였다. 나는 자꾸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당신은 당신의 국적 때문에 꿈꾸던 무언가를 포기한 적이 있었나요? 


 그 강연 내내 나는 그 청년과 나를 동일시했다. 분명 우리의 상황은 다른데도 - 나는 내 여권과 돈 80만 원으로 덴마크를 쉽게 올 수 있었다 - 길거리에서 인종차별을 당할 수 있고, 자신의 나라보다는 덴마크에서 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다는 것 이유만으로 나는 그에게 동일시했다. 


순식간에 나와 그는 피 식민지의 가지지 못한 자들이 되었고 그녀는 식민 제국의 가진 자가 되었다. 




학교에는 캐나다에서 온 영어 선생님이 있다. 그 선생님은 나이가 50대이지만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은 채 세계를 여행 중이다. 그는 중국인 가정에서 자고 자랐는데,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나는 동양인 가족을 두었을 거라고 느끼지 못했다. 그는 묘하게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얼핏 보면 30대로 보이다가도 순간 60대가 되기도 했다. 매우 큰 키에 넓은 체격, 사각 뿔테 안경, 대머리에 검은 수염.  몇 달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의 나이를 알게 되었는데 나는 왠지 놀라지 않았다.


 그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친절하게 대했다. 나는 이 진부한 도덕을 실천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세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응답하세요. 그는 이 모든 것을 매일 실천했다. 나는 그의 성격을 존경하면서도 캐나다에서 하키 하면서 (실제로 하키에 미쳤다) 여행을 20년째 다니는 사람이라면 왠지 가능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모국어가 "영어"라는 이유로 영어를 가르치며 여행 경비를 벌고 있잖아. 게다가 남성이니 여행 다니기에 훨씬 안전하지. 


 나중에 그와 친해진 뒤에 나는 그의 앞에서 술에 취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라고 외쳤다. 나 혼자 배려하고 책임감 느끼는데 지쳐가던 때였다. 프로젝트가 있으니 도와달라 말하기에 밥 급하게 먹고 약속 장소에 갔더니 아무도 없고, 한참 뒤에 웃으며 나타나서 "미안 다음 날 하자"라고 말하는 애들. 짜증이 나서 "너희들 때문에 나 할 일도 못하고 온 거야"라고 말하자, '그럼 말을 하지 그랬어'라고 라고 말하는 애들 앞에서  "이런 이기적인 놈들!'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나날들이었다. 그런 나에게 공동체와 열린 태도를 강조하는 그의 앞에서 나는 결국 폭발했다. 


나랑 정 반대의 조건에 있는 타인을 상상해봐요. 미국인, 백인, 남성, 이성애자, 상위 1프로.  나와 살아온 경험이 전혀 다른 그 사람과 내가 정말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와 그 친구는 같은 것을 봐도 다르게 느낄 테고, 그 친구 앞에 있으면 나는 내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 계속 확인하게 될 뿐이에요.


  결국 그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정폭력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 그 영향으로 병원에서 지냈던 20대. 그리고 그가 어떻게 변했는지, 여전히 어떤 두려움을 느끼는지. 


그의 이야기 앞에서 우리 중 누가 더 불행하고 피해자며 소수자인가,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질문은 산산이 부서졌다. 


내 앞에는 힘든 시간을 거쳐 간신히 지금에 다다른 한 사람이 고단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를 몰이해한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에 사로 잡혀 변변찮은 위로도 건네지 못한 채 채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날 밤 나는 그와 나눈 이야기를 골똘히 생각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나는 나를 착하고 순진한 약자로 두고 싶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많은 폭력들이 개입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그걸 놓치고 마는지. 나는 다음날 어떤 얼굴로 그를 쳐다봐야 할까? 


 새벽 2시에 나는 그에게 솔직한 내 마음을 적어 메시지로 보냈다. 이야기 고마웠다고, 하지만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에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일지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고. 새벽 3시, 그는 나에게 답했다. 


너의 여행의 일부는 마음을 열고 너와는 다른 생각들을 고려해보는 순간들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몰라.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내가 그에게 마음을 열었나?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 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이는 성 교차 성 이론을 배우면서 늘 지녔던 질문이었다. 이 불 공평한 사회에서 너는 특권층이고 나는 약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대해야 하는 걸까?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지지 않고 너와 내가 모두 이해받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 걸까? 


 새벽 3시, 그의 따스한 답에 나는 말했다. 나는 여전히 당신에 대해서 잘 모르겠고, 내가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오늘 밤 꿈에서는 더 이상 당신이 외롭지 않길 바라요. 





*표지그림 : 루이지애나 미술관 홈페이지.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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